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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시록관련/계시록강해노트

숫자로 푸는 요한계시록강해 열 세번째 시간

by 디클레어 2011. 8. 2.

 

숫자로 푸는 요한계시록강해 열 세번째 시간 2021*10/04

 

 

 

 

계시록13장

 

 

계시록12장 마지막절인 17절과 13장1절은 시간상으로 정확히 연결되어 있지는 않다고 12절 강해에서 얼핏 말씀드린 바 있습니다. 12장의 마지막절인 17절에,

 

(17) 그러자 그 용이 여인에게 분노하여 여인의 씨 가운데 남은 자들, 즉 하나님의 계명들을 지키며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를 가진 자들과 싸우려고 나가더라.

 

라는 구절에서 용이 전쟁하려고 나가는 이 때는 후 삼년 반인 마흔 두 달 기간이고, 다시 계시록13장 1절은

 

(1) 내가 바닷가 모래 위에 서서 보니, 한 짐승이 바다에서 올라오는데 일곱 머리와 열 뿔을 가졌더라. 그 뿔들에는 열 개의 왕관이 있고 그 머리들에는 하나님을 모독하는 이름이 있더라.

 

의 이 절은 시간상으로 전 삼년 반을 뜻하는 것이기에 그 두 절 사이에는 겹쳐진 시간이 삼년반이 있다, 라는 것을 설명 드리기 위해 그렇게 말씀드렸던 것입니다. 그런데 개역성경은 12장17절의 번역을

 

(17) 용이 여자에게 분노하여 돌아가서 그 여자의 남은 자손 곧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들로 더불어 싸우려고 바다 모래 위에 섰더라

 

로 번역하면서 있지도 않은 바다 모래 위라는 말을 揷入(삽입)해 놓아서 이 17절과 13장1절의 바다모래가 서로 연결되어 있는 것처럼 보이게 만들어, 마치 정확히 시간상 진행되어 가는 것처럼 變易(변역)해 놓았습니다. 이것이 어떤 오해를 불러 일으키느냐 하면, 일천 이백 육십일이나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나 마흔 두달이 같은 기간으로 보이는 오해를 일으키고, 그러므로 12장에 기술되어 있었던 날짜들이 한이레가 시작되기 전이라고 보이게 하며, 또 결정적으로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를 전 삼년 반으로 전혀 분별할 수 없게 만들어 버리기도 하는 등, 아주 致命的(치명적)인 오류를 內包(내포)하고 있습니다. 만약에 12장 14절에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가 한이레가 시작되기 이전이라고 보이게만 할 수 있다면, 이 세때 반이 전 삼년 반이고, 마흔 두 달은 후 삼년 반이며, 일천 이백 육십일이 교회기간임을 전혀 알 수가 없게 됩니다. 그렇다면 그것을 근거로 해석한 이런 강해들도 모두 틀리는 것이 되어 버리고 만다는 얘기이며, 결국 계시록은 누구도 해석할 수 없는 萬古(만고)의 미스테리가 되어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런 구절들 때문에 한국에 계시록을 연구하시는 많은 분들이 이 규칙을 발견하지 못했던 것이기도 하며, 그동안 하나님께서 아무 때나 쓰시고 싶은 대로 이런 날짜들을 사용하셨다, 라는 오해를 낳게 되었던 것입니다. 또 그런가 하면 이런 오류들 때문에 계시록11장을 해석하면서 1,260일과 마흔 두달을 같은 때로 보시는 분들도 생기게 되었는데 이제 그런 해석은 성경번역상의 오류임을 아시고, 이 규칙을 바탕으로 새롭게 계시록연구에 도전해 보시기를 권해 드립니다. 그럼 이제부터 적그리스도와 거짓선지자의 마흔 두 달이라고 소제목을 붙일 수 있는 13장 1절부터 보겠습니다.

 

(1) 내가 바닷가 모래 위에 서서 보니, 한 짐승이 바다에서 올라오는데 일곱 머리와 열 뿔을 가졌더라. 그 뿔들에는 열 개의 왕관이 있고 그 머리들에는 하나님을 모독하는 이름이 있더라.

 

바닷가라는 것은 앞서 말씀드렸듯이 세상열방을 가리킵니다. 그리고 그 바다에서 한 짐승이 올라오는데 이 짐승의 정체는 계시록17장에서도 등장하고 천사가 그 정체를 설명하는 주홍빛짐승입니다.  일곱 머리라는 것은 創世(창세)적부터 그가 지배해온 王朝(왕조)들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12장 강해때 잠깐 말씀을 드렸었고, 열 뿔이라는 것은 세상의 마지막나라인 넷째짐승에 속한 열 왕들이 이 세상을 정복했음을 의미하고 있는 것입니다. 또 그 열 뿔에 열 개의 왕관이 있다는 것은 열 왕이 한이레기간 시작부터 세상을 완전히 정복했다는 것을 의미하고, 그 머리들에 하나님을 모독하는 이름이 있다고 하는 것은 짐승이 하나님의 이름을 욕보이고, 그분에게 대항하는 자들임을 가르쳐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2) 또 내가 본 그 짐승은 표범과 같고, 발은 곰의 발 같고, 입은 사자의 입 같은데, 용이 자기의 능력과 자리와 큰 권세를 그 짐승에게 주더라.

 

이 짐승의 정체는 열왕과 네피림의 결합체인 넷째짐승인데, 다니엘서7장을 보면 정확히 알 수 있습니다.

 

(3) 큰 짐승들 넷이 그 바다에서 올라오는데, 그 짐승들이 서로 다르더라.

(4) 첫째는 사자 같고 독수리의 날개가 있는데, 내가 보니 그 날개가 뽑혔고 또 땅에서 들려서 사람처럼 발로 서 있게 되었으며 또 사람의 마음을 받았더라.

(5) 또 다른 짐승을 보니 둘째는 곰과 같고 그것이 몸 한쪽 편을 들어올렸는데, 그 입의 잇사이에 갈비뼈 세 대가 물려 있으며, 그들이 그 짐승에게 이렇게 말하기를 "일어나서 많은 고기를 먹으라." 하더라.

(6) 이 일 후에 내가 보았더니, 보라, 또 하나는 표범과 같은데 그 등에는 새의 날개 넷이 있고, 그 짐승은 머리도 네 개가 있으며 권세를 받았더라.

(7) 이 일 후에 내가 밤에 환상들을 보았고, 넷째 짐승을 보았는데 무섭고 무시무시하며, 힘이 매우 세고, 또 철로 된 큰 이빨을 가졌더라. 그 짐승이 먹고 산산이 부수며 그 나머지는 발로 밟더라. 그 짐승은 먼저 있었던 모든 짐승들과 다르며, 또 그 짐승은 열 뿔을 가졌더라.(여기서 철로 된 큰 이빨은 다니엘2장의 금 신상에서 나오는 철과 흙이 섞인다는 그 철을 의미하는 천사를 의미하고, 그러므로 그 이빨이라는 것은 타락한 천사들이 성도를 죽인다는 것을 암시한다)

 

먼저 이 바다에서 올라온다는 큰 짐승들 넷은 세상을 지배하고 다스려 왔던 나라들을 얘기하는데 그 해석은 그 뒷장인 다니엘8장에서 알려 주는 대로 첫째 짐승은 메대와 바사국을 얘기하며, 둘째짐승은 그리스, 헬라를 의미하고, 셋째 짐승은 로마를 가리키며, 넷째 짐승은 2000년을 훌쩍 건너뛰어 열 뿔이 지배하고 적그리스도가 드러나는 마지막 세상의 왕국을 의미합니다. 7절에 이 일 후에 밤에 환상들을 보았다는 것이 그 2.000년 기간을 암시하고 있는 것이며, 바로 이 넷째짐승이 이 곳에 등장하는 표범같고, 곰의 발 같고 사자의 입 같다는 짐승입니다. 이것은 그 네 짐승을 모두 지배하고 다스렸던 사탄이었으므로 사탄인 적그리스도가 그 짐승과 자신의 영광을 나눈다는 것이니 그 의미하고 있는 바를 캐치(catch)하시기 바랍니다. 

 

조금 자세히 보자면 그가 넷째 짐승에게 자기가 가진 큰 힘, 즉 칼이라고 볼 수 있는 평화를 제하는 권세와,  능력을 넷째짐승에게 준다는 것입니다. 그가 짐승에게 자신의 자리를 넘겨주는 이 시기는 그가 하늘에서 쫓겨난 후이므로 전 삼년 반인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가 시작될 때이기는 하나, 이 권력을 받고 본격적으로 행사할 수 있는 기간은 후삼년인 마흔 두달부터이니 아직 그의 본색을 드러내지 못하고 있다가, 이제 그의 때가 시작되는 5절에서 자신의 마성을 드러내어 성도들과 전쟁을 일으키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을 서술해 놓은 장들이 계시록9장 여섯 번째 나팔이며, 계시록11장7절에 두 증인과 전쟁을 벌인다는 구절이고, 12장17절에서 여자의 남은 자와 전쟁을 하러 나간다는 그 시점입니다. 그런데,

 

(3) 또 내가 보니, 그의 머리들 가운데 하나가 상처를 입어 죽게 된 것 같았으나, 그의 치명적인 상처가 나으니 온 세상이 기이히 여겨 그 짐승을 따르더라.

 

그의 머리들 가운데 하나가 상처를 입었다는 것은 그 일곱 머리중 역사적으로 폐망했던 왕조들 중의 한나라임을 의미합니다. 그 일곱 머리는 첫번째, 홍수전 네피림으로부터 홍수후 시날땅의 니므롯, 그리고 느부갓네살의 신 바벨론제국, 메대와 바사, 알렉산더의 그리이스 헬라, 로마제국, 그리고 마지막 일곱 번째인 세계를 통일하는 세상의 마지막 열왕정부로 볼 수 있습니다. 이 일곱 왕조들 중에 폐망했다고 누구나 생각하고 있던 나라들 중에서 다시 일어나 출현한다는 것을 암시하는 것이, 상처를 입어 죽게 된 것 같았으나, 그의 치명적인 상처가 나으니 온 세상이 기이히 여겨 그를 따른다고 하는 구절이 가진 의미입니다.

 

그렇다면 이 일곱머리중 과연 어떤 왕조가 되살아 난다는 것일까요. 그 나라는 성도들 누구나 이미 폐망했다고 볼 수밖에 없는 홍수전 네피림으로 볼 수 밖에 없습니다. 그 확실한 증거는 계시록17장에서 보여드리고 증거해 드리겠습니다. 

 

(4) 사람들이 그 짐승에게 권세를 준 용에게 경배하고 또 그 짐승에게도 경배하며 말하기를 "누가 그 짐승과 같으며 누가 감히 그와 더불어 싸울 수 있으리요?"라고 하더라.

 

이 구절에서 그 짐승에게 권세를 준 용에게 경배하고 또 그 짐승에게도 경배하는 이 사람들은 열 왕과 그를 따르는 소수의 이방인 권력자들이라고 볼 수 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 때는 전 삼년 반이니 그가 등장했다는 것을 성도들이나 세상 사람들은 전혀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들이 놀라는 이유는 열 왕중에 자신들의 친구였던 세 왕을 그가 무너뜨리는 것을 보고 그의 지략이나 힘에 놀랐기 때문이며, 결국 그의 놀라운 능력에 감탄하고 복종하여, 자신들이 가진 권세를 적그리스도에게 양도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적그리스도는 이 열 왕을 이용해 마흔 두 달 기간 동안에 그의 철권통치를 시작하게 되는 것이며 이 때부터 비로서 성도들의 순교도 시작되는 것입니다.

 

(5) 그 짐승이 큰 일들과 모독하는 말을 하는 입을 받았으며 또 마흔 두 달 동안 지속적으로 활동할 권세를 받았더라.

 

이처럼 전삼년반에 자신을 몇몇 이방인들에게 드러낸 짐승은 이제 그가 본격적으로 활동할 마흔 두 달, 곧 후 삼년 반 기간 동안에 성도들에게 逼迫(핍박)과, 壓制(압제), 그리고 迫害(박해)를 가하게 되는 것이며, 그 해 그 월 그 달 그 시에 주의 성도 이억명을 짐승을 통해 죽이는 것으로 세상에 다시 없을 대환란을 시작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마흔 두 달이 계시록11장과의 비교를 통해서도 후 삼년 반, 대 환란 기간임을 뜻하는 것임을 이제 확실히 아셨을 것이라고 생각을 하는데, 아직 미심쩍은 분들이 있다면 계시록14장과 15장에서 그 증거를 보여드리겠으니, 그 때 다시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6) 그 짐승이 입을 벌려 하나님을 향하여 모독하되 그의 이름과 그의 성막과 하늘에 거하는 자들을 모독하더라.

 

이 때는 드디어 후삼년반인 마흔 두달기간으로 진입했다고 봐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이 짐승을 적그리스도인 사탄으로 볼 수도 있는 여지가 충분히 있으나, 무저갱에서 올라온 네피림으로 보는 것이 더 타당해 보입니다. 이 절에서 그가 하나님을 모독한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금지하셨던 모든 것들을 거리낌없이 행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본래 천사나 사람들은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일들에 대한  양심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하지만,  자신들의 때가 얼마남지 않았으므로 하고 싶어 했던 일들을 마음껏 한다는 것을 표현한 것이라는 겁니다.

 

(7) 그가 성도들과 싸워 그들을 이기는 권세를 받았으며 모든 족속과 언어와 민족을 다스리는 권세를 받았더라.

 

짐승이 성도들과 싸워 그들을 이기는 권세를 받았다는 것은 명백히 주의 성도들이 그와의 전쟁에 패한다는 것을 의미하며, 이것은 곧 성도들의 순교가 이 때부터 일어날 것이라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는 것입니다. 앞서 후 삼년 반이라고 증명했던 계시록9장의 여섯 번째 나팔과 11장의 무저갱에서 올라온 짐승과 싸워 죽게 된다는 7절의 두 증인이 모두 이 때에 이런 일들이 일어날 것임을 증명해 주는 구절들이라고 볼 수 있다고 앞서도 말씀드렸습니다. 그러므로 이 시기에 관한 것을 명확히 분별할 수 있어야 계시록이 여러분께 다가갈 것이니, 먼저 이 시기에 관한 것을 연구해 볼 것을 다시 한번 권해 드립니다.

 

(8) 세상의 기초가 놓인 이래로 죽임당한 어린 양의 생명의 책에 그들의 이름이 기록되지 못하고 땅에 사는 모든 자는 그에게 경배할 것이라.

 

세상에 기초가 놓인 이래라는 것은 창조 때라는 것을 말하며, 어린 양의 생명의 책에 그들의 이름이 기록되지 못했다는 것은 주님께서는 구원받을 성도들을 이미 알고 계시다 라는 것을 의미하고, 또 녹명되지 못한 그러한 자들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거나, 알려고 하지도 않거나, 혹은 개독이라 부르며 증오하는 자들 일테니, 당연히 주의 말씀을 거들떠도 보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니 그 분의 명령인 우상을 섬기지 말라는 계명을 무시하고, 적그리스도를 경배할 것이며, 그 無知(무지)함으로 인해 그들은 모두 審判臺(심판대)에 설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9) 누구든지 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

 

누구든지 귀 있는 자는 들을 지어다 라는 것은 주님을 알고 그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모든 사람들을 의미합니다.

 

(10) 포로로 삼는 자는 그도 포로가 될 것이요, 칼로 죽이는 자는 그도 칼에 죽게 될 것이라. 여기에 성도들의 인내와 믿음이 있느니라.

 

이 10절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성도들의 인내와 믿음이 있느니라입니다. 그렇게 되면 그 앞 절에 쓰인 글의 의미가 다가오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예레미야 30장16절에 있는 글과 같은 맥락을 가진 구조로써 그 절을, 이번에는 개역성경을 통해 한번 보겠습니다.

 

그러나 무릇 너를 먹는 자는 먹히며 무릇 너를 치는 자는 다 포로가 되며 너를 탈취하는 자는 탈취를 당하며 무릇 너를 약탈하는 자는 내가 그로 약탈을 당하게 하리라

 

라는 것에 대입을 해보면 포로로 삼는 자와 칼로 죽이는 자는 모두 성도들을 핍박하는 자리에 있는 이방인들을 얘기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따라서 그 말이 가진 뜻은 그들에게 고통을 당하고, 심지어 죽임을 당한다 하더라도 참고 견디어 네 믿음을 증명하면 내가 심판날에 그들을 심판하고, 너에게는 두아디라교회에게 주신다고 하셨던 철장으로 민족들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겠다는 의미임을 알 수 있습니다.

 

(11) 또 내가 보니, 다른 짐승이 땅에서 올라오는데 어린 양처럼 두 뿔을 가졌으며 용과 같이 말하더라.

 

이 자는 마흔 두 달 통치기간의 중간 정도시기에 출현하지 않을까, 보고 있는 거짓선지자입니다. 계시록을 잘 알지 못하는 많은 성도분들이 이 적그리스도와 거짓선지자를 같은 사람으로 보거나, 헷갈려 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러나 적그리스도와 거짓선지자는 서로 다른 사람입니다. 적그리스도는 처음부터 거짓말 한 자이며, 이 거짓 선지자는 기독교쪽이거나 혹은 기독교를 가장한 다른 종교에서 그의 신분을 감추고 등장하는 영적존재입니다. 그 정체는 계시록16장에서 일러주시고 그 때도 설명을 하겠지만,  적그리스도라 불리는 사탄과 거짓선지자로 불리는 이 둘은 영적존재인 천사임을 말씀드리겠습니다. 물론 짐승도 네피림으로써 천사들의 집합체를 그렇게 지칭하겠다고 앞서 말씀드린 바도 있습니다. 따라서 적그리스도와 짐승과 거짓선지자는 모두 하늘에서 떨어진 타락한 천사들이고 하나님께서는 이들을 불못에 던져 넣으신다는 것입니다.

 

(12) 그가 자기 앞에 있던 첫째 짐승의 모든 권세를 행사하고 또 땅과 거기에 사는 자들로 하여금 치명적인 상처를 치유받은 그 첫째 짐승에게 경배하게 하더라.

 

그가 사람들앞에서 첫째짐승의 모든 권세를 행사한다는 것은, 넷째 짐승인 네피림과 똑같은 행위를 한다는 것으로 볼 수 있고, 실로 그 힘이 막강한 그들을 따르고 섬겨야 한다는 말로 많은 사람들을 현혹한다는 것입니다.

 

(13) 또 큰 이적들을 행하는데 심지어는 사람들 앞에서 불을 하늘에서 땅 위로 내려오게 하더라.

 

이 큰 이적이 실제로 하나님이 일으키는 기적과 같은 것인지 아닌지는, 계시록19장에 보면 나와 있습니다. 20절입니다.

 

(20) 그러나 그 짐승이 잡히고, 짐승 앞에서 기적을 행하던 거짓 선지자도 그와 함께 잡혔으니 그는 짐승과 더불어 그 짐승의 표를 받은 자들과 그의 형상에 경배한 자들을 속이던 자라. 이 둘이 유황으로 불타오르는 불못에 산채로 던져지더라.

 

그 짐승이라 함은 네피림, 즉 넷째짐승을 가리키고, 그 앞에서 기적을 행하던 거짓선지자도 그와 잡혔다는 구절후에 보시면 이 짐승과 거짓선지자가 그를 따르는 사람들을 속였다는 것으로 보아, 그가 부렸다는 이적은 그저 눈속임에 지나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늘에서부터 땅으로 불이 내려오게 한다는 이 기적은 결국 사람을 미혹하기 위한 마술에 지나지 않았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 얘기는 곧 눈으로 보이는 것이 모두 진실은 아니라는 것을 얘기하는 것이니, 혹 그런 이적을 보시더라도 흔들리지 마시고, 그들은 경배받아야 할 神(신)같은 존재가 아님을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14) 그가 짐승 앞에서 행할 권세를 받아 그 같은 기적들을 통하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미혹하며, 또 땅에 거하는 자들에게 말하기를 칼로 상처를 입었다가 살아난 그 짐승을 위하여 형상을 만들어야 한다고 하더라.

 

이 구절을 다시 적어 보겠습니다. 

 

그가 네피림앞에서 행할 권세를 받아 그 같은 기적으로 사람들을 미혹하고, 하나님을 믿는 성도들에게도 말하기를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버리고 적그리스도, 즉 사탄을 하나님으로 섬겨야 한다고 말하더라.

 

입니다. 여기서부터 짐승이 적그리스도인 사탄으로 바뀌어 표현이 되니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그 짐승을 위하여 形象(형상)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은, 다니엘3장에 느부갓네살이 세운 금신상을 떠오르게 합니다.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에게 자신이 세운 금신상에게 경배하지 않으면 극렬히 타는 풀무불에 던져 넣겠다며 협박하며 윽박지르던 그런 일들이 앞으로도 일어날 것임을 보여준다는 것입니다.

 

(15) 또 그가 짐승의 형상에게 생명을 주는 권세를 받아 그 짐승의 형상으로 말도 하게 하고, 그 짐승의 형상에게 경배하지 아니하는 자는 다 죽이도록 하니라.

 

그가 짐승의 형상에게 생명을 주는 권세를 받았다는 것은, 거짓선지자가 사탄을 하나님으로 만드는 작업에 들어갔다고 볼 수 있습니다.  돌로 만들었든 쇠로 만들었든 그런 생명이 없는 것들이 말을 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니까 말입니다. 따라서 그 짐승의 형상으로 말도 하게 한다는 것은 그 형상이 곧 세상의 통치자요, 자신을 하나님이라고 선언한 적그리스도를 뜻하는 것이니 그에게 예배하게 한다는 뜻입니다. 그 형상에 경배하게 한다는 말이, 곧 적그리스도에게 경배한다는 의미이니 말입니다. 이것은 조금 어려우니 묵상과 더불어 연구하시기 바랍니다.

 

에스겔8장에 보면 이스라엘 여자들이 담무스를 위해 애곡하고, 이스라엘의 장로들이 동쪽에서 떠오르는 태양을 향해 경배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것은 그들의 삶이 풍요롭고 풍성하게 되기를 바라는 뜻에서 태양을 향해 경배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께 기도하고 은혜를 베풀어 달라고 간구해야 할텐데, 하나님은 뒷전에 둔 채, 생명도 없는 태양이나 그의 아들역할이라고 볼 수 있는 담무스에게 비는 꼴이 되었으니 어찌 하나님보시기에 가증스럽지 않겠습니까,  바로 이러한 일들이 말세에 다시 한 번 일어날 것임을 이 15절에서 예언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16) 그가 모든 자, 즉 작은 자나 큰 자, 부자나 가난한 자, 자유자나 종이나 그들의 오른손이나 이마에 표를 받게 하고

(17) 그 표나 그 짐승의 이름이나 그의 이름의 숫자를 지닌 사람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사거나 팔 수 없게 하더라.

(18) 지혜가 여기에 있으니 지각이 있는 자는 그 짐승의 숫자를 헤아려 보라. 그것은 한 사람의 숫자이니, 그의 숫자는 육백육십육이니라.

 

바로 이 666표에 관해 계시록을 연구하는 다른 분이 쓴 글 중에 마음에 드는 글이 있어서 要點(요점)만 가져오도록 하겠습니다. 제목은 베리칩이 666표인가, 입니다.

 

 

요즈음 많은 사람들이 베리칩(Verichip)에 대해 혼란을 빚고 있습니다. 가장 큰 핵심은 Verichip이 성경에 나오는 짐승의 666표인가 아닌가 하는 논란이고, 또 한 가지는 Verichip을 우리 몸 안에 이식을 받으면 구원을 받는가, 못 받는가 하는 논란입니다. 사실 이 문제는 우리가 영원한 천국에 들어가느냐, 들어가지 못하느냐 하는 문제가 되기 때문에 매우 심각하다고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과연 Verichip은 무엇이며 우리의 구원과는 어떤 관계가 있을까요? 먼저 분명히 알 것은 Verichip은 짐승의 표(666)가 아니며, 우리의 구원과도 상관이 없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면 Verichip은 짐승의 표(666)가 아니며, 우리의 구원과도 상관이 없다는 사실을 무엇으로 알 수 있겠습니까? Verichip이 짐승의 표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말을 따르면, Verichip을 받게 되면 그 Verichip이 우리의 정신세계까지도 통제하기 때문에 예수를 믿는 사람도 예수를 부인하게 되며 짐승에게 경배하게 된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유추에 불과하며 속임수에 지나지 않습니다. 요한계시록 13:15-18절을 보고 그 말씀을 자세히 살펴보면 짐승의 표를 받는 것 보다 더 우선적인 것은 짐승의 우상에게 경배하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요한계시록 14:9절에 보면 “또 다른 천사 곧 셋째가 그 뒤를 따라 큰 음성으로 이르되 만일 누구든지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고 이마에나 손에 표를 받으면”이라고 했고, 11절에 보면 “그 고난의 연기가 세세토록 올라가리로다,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고 그의 이름의 표를 받는 자는 누구든지 밤낮 쉼을 얻지 못하리라 하더라” 라고 말씀합니다.

 

여기서 말씀을 잘 살펴보면 ‘경배하든지, 표를 받든지’가 아니고, ‘경배하고 표를 받으면’입니다. 다시 말해 or가 아니라 and로 되어 있습니다. 이는 결국 표를 받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짐승을 섬기는 것이 문제이며,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는 자가 짐승의 표를 받게 됨을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결국 표를 받기 때문에 지옥에 가는 것이 아니라 예수를 믿지 않고 짐승에게 경배하기 때문에 지옥에 간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계속해서 12절에 보면 “성도들의 인내가 여기 있나니 그들은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에 대한 믿음을 지키는 자니라”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구원과 멸망의 기준은 예수그리스도를 믿느냐 믿지 않느냐 하는 것이지 표를 받느냐 받지 않느냐 하는 문제가 아니라는 애깁니다.

 

이상 脈(맥)이라고 생각하는 부분만 옮겨서 여러분과 함께 나눠보았습니다. 사실 이것은 제가 생각하는 부분과도 매우 일치하고 있어서 마음에 드는 글이고, 옮겨져 있는 이 부분에 대해서 공감하고 동의하는 바입니다. 사실 저는 숫자로 푸는 요한계시록에서 계시록13장 666표에 대해 설명하며 다니엘3장을 통째로 옮겨 성경책을 따로 찾아보지 않고도, 읽으며 다시 한번 묵상해 볼 수 있도록 해 놓았습니다. 다니엘과 요한계시록에 대해 설명할 때, 다니엘이 없으면 요한계시록은 반쪽 계시일 뿐이오, 또 요한계시록이 있으므로 다니엘을 완벽히 이해할 수 있다, 라고 한 적이 있었는데, 날짜와 숫자에 대해서는 물론이고. 이런 해석적인 부분에서도 두 책은 서로 補完的(보완적)인 관계에 있기 때문입니다.

 

 다시 이 666표에 대해 조금 더 첨언하자면, 베리칩에 대해 목을 메달고 그것이 사실일 것이라고 철저하게 믿는 분들도 많이 있습니다. 또 이런 설명을 아무리 해도 그 자체를 부정하기 때문에 아마도 베리칩을 받는다는 그 날까지 그것을 666표라고 굳게 믿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믿고 있다고 해도, 그는 목숨을 바쳐 666표를 받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그런 사람이라면 더불어 짐승에게도 경배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을 저는 가지고 있습니다. 혹시 그런 사람들이 생각하기를 “나는 짐승에게 경배하더라도 666표인 베리칩을 받지 않았으니 괜찮다”, 라고 하는 답답하고도 두 말할 가치가 없는 어리석은 생각을 하지만 않는다면 말입니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분별이니 여러분께서도 적그리스도숭배는 절대로 안 된다는 것을 다시 한번 다짐하시는 시간들이 되시기를 바라며,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의 믿음을 소유하시기를 바라마지 않습니다. 그리고 17절에서 그 표가 없는 자는 매매를 못하게 한다는 말의 의미는 짐승을 경배하지 않는 자들은 모두 죽여버린다, 라는 숨어 있는 뜻이 있으니 문자적인 해석에도 주의하시고, 바로 이런 일들이 일어나는 때가 대환란 기간인 마흔 두 달이요, 후 삼년 반임을 암시하고 있다는 것도 부언합니다. 자세한 설명은 숫자로 푸는 요한계시록을 참고 하시기 바라며, 이상 계시록13장을 마치고, 7장에 이어 구원받은 성도의 또 다른 장이라고 할 수 있는 계시록 14장에서 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