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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시록관련/성경교제관련

예정론에 관한 소고

by 디클레어 2012. 1. 1.


예정론에 관한 소고




먼저 예정론에 대해 저도 다시 한 번 묵상해 볼 기회를 주신 것에 대해 감사드립니다. 사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알미니안의 5개조 전제와 칼빈주의 5대 강령의 비교에서 이미 말씀드린 바도 있었고, 각 글들 가운데에서 틈틈이 드린 말씀들도 있었기에 그동안 묵상해 온 것에 대해서 추가적인 선에서 말씀을 드려볼까 합니다.


아시겠지만 예정론에 관해 알아보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가 복합적으로 어우러져야 합니다. 그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하나님의 천지창조목적과 그 분의 徑輪(경륜)을 살펴보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천지창조목적에서 예정론을 언급했던 것이구요. 먼저 말씀드릴 것은 하나님의 마음을 모두 알 수는 없겠지만 어느 정도는 사람에게 담아주신 마음으로 그 분께서 행하신 일들을 보면서 알리시고자 했던 일들과 또 하시고자 하는 일들을 통해 그 분의 목적을 짐작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예정론에서 어느 정도 거부감이 없이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선택한 자들도 있음에 대해서일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주권이라고 이미 말씀을 드린 바 있었고 그 누구도 간섭할 수 없는 하나님의 권리에 속하는 부분이라고 설명 드린 바도 있습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생각해야만 할 것은 하나님의 전지전능에 관한 부분입니다. 저는 앞선 글에서 그 분께서는 全能(전능)하신 분이시고 그 전능안에는 全知(전지)도 포함되어 있다고 말씀드린 바 있습니다. 또 그 전지와 전능이 상호모순이라고 주장하는 논리를 파하기 위해 全知(전지)라는 것은 全能(전능)안에서의 전지를 가리키고 있다는 것을 언급한 적이 있었는데 이 말의 뜻은, 하나님께서는 아시려고 하면 얼마든지 아실 수도 있고 또 미리 알고 싶지 않으신 것들은 얼마든지 알지 않으실 수도 있는 분이시다, 라는 것을 피력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결론은 성경의 이런 구절들을 통해 증명할 수 있습니다.


(8) 그 백부장이 대답하여 말씀드리기를 "주여, 주께서 내 지붕 아래로 오시는 것을 내가 감당할 수 없사오니 오직 말씀만 하옵소서. 그러면 내 종이 나을 것이옵니다.

(9) 나도 권위 아래 있는 사람이요 내 수하에도 병사들이 있어서 내가 이 사람더러 '가라.' 하면 가고, 또 저 사람더러 '오라.' 하면 오나이다. 또 내 종더러 '이것을 하라.' 하면 그렇게 하나이다."라고 하니

(10) 예수께서 이 말을 들으시고 놀라워하시며 따르는 사람들에게 말씀하시기를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스라엘 중에서 이처럼 큰 믿음을 본 적이 없노니, 결코 없도다.-마태복음8장.


또한,


(5) 그리하여 거기에서는 불과 몇 사람의 병자에게 안수하여 고쳐 주신 것 외에는 다른 권능을 행하실 수 없었더라.

(6) 주께서 그들이 믿지 않으므로 이상히 여기시고, 마을마다 다니시며 가르치시니라.-마가복음6장.


보시듯 전능하신 주님께서 놀라워하시기도 하고 기이히 여기기도 하십니다. 그런데 모두가 알다시피 사도요한은 주님에 대한 증거를 이렇게 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2장입니다.


(24) 그러나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자신을 맡기지 아니하시니, 이는 주께서 모든 사람을 아시기 때문이더라.

(25) 또 사람 속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를 아시므로 누가 사람에 관하여 증거하는 것도 필요로 하지 아니하시더라.


그러니 이런 구절들을 보고 종합해서 판단해보면 만일에 주님께서 알고자 하셨다면 얼마든지 아실 수도 있으나, 앞선 절들에서 보았듯이 놀라워하시고 기이히 여기셨다는 것은 굳이 모든 것을 일부러 다 알고 계시지는 않으시다, 라는 것을 보여주기도 하는 것입니다. 그에 대한 이유라면 아마도 사람들과 똑같이 희노애락을 느끼시려는 人子(인자)라고 말씀하신 그 분의 성품때문이 아닌가 보고 있으며, 또 다른 이유라면 그 분 안의 기쁨을 위해서, 혹은 그 분께서 세상 역사를 주장해 나가시는 가운데에서 지루함없이 그 목적의 완성을 이루기 위해서 일 것이라고도 보고 있습니다. 어떤 이유에서이든 간에 성경의 모든 구절들 하나하나가 그 분에 대해 기록한 것임을 알 때, 우리는 그 분의 말씀들안에서 그 의미를 짐작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예정론에 대한 거부감중 아마도 믿는 자들에 대한 예정은 그런대로 받아들일 수 있겠지만 불못에 들어가는 자들이 예정되어 있다는 것은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다는 것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것에 대해 알기 위해서는 우선 옛 뱀, 마귀라 불리는 사탄에 대한 말씀들을 찾아보아야 합니다. 이사야는 그의 책에서 그에게 교만함이 드러나 하나님의 자리에 앉으려 했다는 것으로 그의 죄를 드러내고 있습니다.


(12) 오 아침의 아들 루시퍼야, 네가 어찌 하늘에서 떨어졌느냐! 민족들을 연약하게 하였던 네가 어찌 땅으로 끊어져 내렸느냐!

(13) 이는 네가 네 마음속에 말하기를 "내가 하늘에 올라가서 내 보좌를 하나님의 별들보다 높일 것이요, 내가 또한 북편에 있는 회중의 산 위에 앉으리라.

(14) 내가 구름들의 높은 곳들 위로 올라가서 지극히 높으신 분같이 되리라." 하였음이라.

-이사야14장.


그리고 사도요한은 그의 복음서8장에서 그런 악이 그 안에서 스스로 우러나왔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44)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나와서 너희 아비의 정욕을 행하고자 하는도다. 그는 처음부터 살인자였으며 진리 가운데 거하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자기 안에 진리가 없음이라. 그가 거짓말을 할 때는 자신에게서 우러나와 한 것이니, 이는 그가 거짓말쟁이요 또 거짓말의 아비이기 때문이라.


이 말씀을 보았을 때 사탄이라 불리는 그의 사탄됨이 그가 가진 마음에서 스스로 생겨났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인자라고 하신 그대로 그 분의 모든 감정들과 성향들을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사탄을 포함한 천사들에게도 담아주셨음을 알 수 있게 됩니다. 그리고 앞부분에서 보셨지만 하나님의 아들들이 있듯이 마귀를 아비로 둔 자들도 있음을 드러내고 계시고, 또 47절에서는 그들이 하나님으로부터 나지 않은 자들이라고 하십니다.


(47) 하나님께로부터 나온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느니라. 너희는 하나님의 말씀들을 듣지 아니하나니, 이는 너희가 하나님으로부터 나오지 않음이라."고 하시니라.


하나님께서 만드시지 않으셨는데 그들에게서 무엇인가가 나올 수는 없습니다. 이 말의 뜻은 곧 그들이 변절되었다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일 겁니다. 그렇다면 그들의 변질은 누구로부터 비롯되었다는 것일까요, 그 답은 역시 죄의 근본이랄 수 있는 옛 뱀이요 마귀요 사탄에게 있습니다. 그는 가인을 통하여 아벨을 살해케 한 원흉입니다. 바로 가인이 그의 혈통을 통하여 온 마귀의 자식들의 근본이라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12) 카인같이 되지 말라. 그는 악한 자로부터 나왔으며 자기 아우를 살해하였으니 무슨 연고로 그를 죽였겠느뇨? 이는 그 자신의 행위는 악하고 그 아우의 행위는 의로웠기 때문이라.-요한일서3장


사도요한은 가인이 악한 자라고 합니다. 또 그는 8절에서 마귀를 언급한 이후에 다시 이 12절에서 가인을 언급하면서 그 둘은 결국 같은 뿌리임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여담이지만 영원히 죽지 않는 존재들로 태어났던 사탄과 그를 따르는 천사들은 어찌 보면 아벨을 죽임으로 인해 자기들과 같은 不死(불사)의 존재들일 것이라고 여겼던 사람들이 죽을 수도 있음을 발견하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들은 그 때까지 하나님의 형상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죽는다는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고 있었을테니 말입니다. 아마도 그들은 자신들과 같은 모습을 가지고 있는 아벨이 피를 흘리고 죽는 모습을 보고 놀랐을 수도 있으며, 그 후에 자신들의 힘으로 사람을 죽일 수도 있음을 알고 기고만장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그런 죄를 지은 사탄이 언제 어디서부터 그 교만함이 그의 마음속에 자리 잡게 되었는지는 이런 구절들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에스겔28장입니다.


(13) 네가 하나님의 동산 에덴에 있어 모든 귀한 돌인 홍보석과 황옥과 금강석과 녹보석과 얼룩마노와 벽옥과 사파이어와 에메랄드와 홍옥과 황금으로 덮여 있었고, 네 북들과 관악기들이 만들어짐이 네가 창조되던 날에 네 안에 예비되었도다.

(14) 너는 기름 부음을 받은 덮는 그룹이라. 내가 너를 그렇게 세웠더니 네가 하나님의 거룩한 산 위에 있었고 네가 불의 돌들 가운데를 위아래로 걸었도다.

(15) 너는 네가 창조된 날로부터 죄악이 네게서 발견되기까지 너는 네 길에 완벽하였도다.


이 구절을 살펴보면 그는 악을 위해 창조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구절을 이해하기 위해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이 바로 앞서 언급했던 하나님의 전지전능에 관한 부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탄이 교만한 마음을 가지고 그가 하나님자리에 앉으려 할 것이다, 라는 것을 모르셨을까 하는 문제가 대두되기 때문입니다. 그 문제는 약간 다른 관점에서 이렇게 풀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불못을 예비하신 것은 그 타락한 천사들을 위해서라고 하십니다.


(41) 그때에 왕이 왼편에 있는 자들에게도 말하기를 '너희 저주받은 자들아, 내게서 떠나 마귀와 그의 천사들을 위하여 준비한 영원한 불 속으로 들어가라. -마태복음25장


이 말씀을 보았을 때 불못은 창세전에 이미 예비되어 있었던 것이 아니고, 창세후에 천사들이 타락하자 그들을 벌하시기 위하여 그때서야 만드셨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바로 이 부분에서 전능안에서의 전지를 생각해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것은 평화와 안정이었으나 이후에 그것을 방해하는 존재의 드러남이 있었다는 것이고 미래의 일들을 미리 알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품성에 의해 가리워져 있었다고 볼 수 있다는 것을 말입니다. (물론 이것은 말씀을 통해 추론해 본 짐작일 수 밖에 없음을 인정하고, 또 가령 하나님께서 그 모든 것을 알고 계셨다고 해도 절대주이시기에 上告(상고)할 수 있는 존재는 아무도 없습니다)


여하튼 이러한 말씀들을 보고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일단 믿는 자들에 관한 예정, 즉 계시록12장의 해를 입은 여자인 택함 받은 영적인 유대라인이 있다는 것은 사실이며, 그에 따라 이미 예정하신 구원받는 숫자도 있으니 결국 그것은 하나님의 주관적인 작정이시므로 아무도 그것에 대해 이의를 제기할 수 없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하나님의 전지전능성에 의해 아실수도 혹은 알지 않으실 수도 있는 권리에 의해서 선택되어지지는 않았지만 주의 사랑과 은혜에 의해 구원을 받는 대부분의 사람들 (이것은 예수그리스도께서 나시기 이전과 이후의 하나님의 이름을 들어보지 못한 모든 사람들 포함) 도 있다는 것이며, 또한 다시 전지하신 그 분의 능력에 의해 사탄을 아비로 둔 자들이 있음으로 불못에 들어가는 자들도 있다는 것입니다. 이 불못에 들어가는 자들은 말 그대로 마귀를 아비로 둔 자들이며, 그를 따르는 천사들과 함께 불못에 들어갈 것입니다. 그런데 말씀을 보고 분별을 했을 때, 이 불못에 들어갈 사람들은 많지 않을 거라는 것이며, 말세에 나타나는 열 왕이나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들에게 동참한 자들이 들어가는 것이기에 일반적인 백성들이 이 불 못에 들어가기가 여간 어렵지 않다고 말씀드렸던 것입니다. 그런 측면에서 하나님을 믿지 않거나 알지 못하는 자들은 과연 어떻게 될 것인가 하는 문제가 생겼었는데 그것에 대해 말씀드린 것이 바로 하나님의 공의라는 글에서 언급한 부분입니다.


 말씀을 드리다 보니 또 다른 부분에서 의문이 생길 것 같아 아무래도 앞선 글들에서는 얘기하지 않았던 것을 꺼내야 될 듯 싶습니다. 바로 하나님을 믿어 왕들과 제사장이 되는 자들과 그렇지 않은 자들에 관한 부분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분의 나라에 참여하는 백성들을 위해 예비하신 것은 화평과 안락과 평안입니다. 하나님의 공의에 대해 묵상해 보면 아시겠지만 그 분의 공의는 하나님의 이름을 모른다고 해서 모두 불못에 던져 넣으시지는 않는다는 것이 그동안 말씀을 통해 알아낸 분별이고, 따라서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들은 천년왕국때에 그들 나름대로 하나님께서 임명하신 왕들, 즉 들림과 승천과 휴거된 백성들 중 하나님께서 임명하신 왕들 아래에서 꽤 안락하고 행복한 삶을 영위하게 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이 주장의 증명은 계시록과 더불어 이런 구절들에서도 알 수 있습니다.


(16) 그때 첫 번째 사람이 와서 말하기를 '주여, 주께서 주신 한 므나로 열 므나를 벌었나이다.'라고 하니

(17) 그에게 말하기를 '잘하였다, 착한 종아. 네가 아주 작은 일에 신실하였으니 열 고을을, 다스리는 권세를 가지라.'고 하더라.

(18) 그 다음에 두 번째 사람이 와서 말하기를 '주여, 주께서 주신 한 므나로 다섯 므나를 벌었나이다.'라고 하니

(19) 그에게도 이같이 말하기를 '너도 다섯 고을을 다스리는 자가 되라.'고 하더라.

-누가복음19장


총 6억이 넘는 주의 백성들은 모두 왕들과 제사장들이 되어 그들을 다스리고 살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발생되는 문제가 첫 번째 부활에 참여한 육 억명 모두가 왕이 되어 다스린다면 그들이 다스릴 고을은 더 많아야 하는데 그토록 수없이 많은 고을들이 존재할 수 있겠는가 하는 의문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6억명이 훨씬 넘는 사람들이 천년동안 살면서 아이들을 낳는다고 한다면 그야말로 상상하기 어려운 숫자가 될 것을 안다면 이 말씀들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또 그러함으로 발생되는 다른 의문은 그 수많은 사람들이 과연 이 지구라는 땅덩어리안에서 모두 살 수 있을까라는 문제가 발생되는 것이며, 아마도 제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그래서 지구만이 아닌 다른 행성들 가운데서도 하나님께서 사람들이 살 수 있는 곳으로 만드시는 곳이 있지 않을까 분별하고 있습니다.


인구에 관해서 예를 들자면 아담과 하와 두 사람이 시작해서 노아의 홍수때까지 1,500년간 최소 10억에서 최대 100억이 넘는 사람들이 존재했을 것이라고 창조과학자들은 計算(계산)을 합니다. 그런데 여기서는 그 시작이 구원받은 주의 성도가 6억명이 넘고 그 왕국에 참여하는 사람들까지 포함하면 아마도 그 선택받은 수의 10배정도는 족히 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런 그들로부터 시작해서 安樂(안락)한 그곳에서 자그마치 천년동안 아이를 계속 낳는다고 한다면 그 숫자를 쉽게 짐작하기조차 어렵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선지서등에서 말씀하신 주의 백성들이 모여 살아갈 예루살렘이라는 곳은 이 지구를 가리키는 것이 아닌가 보고 있고, 주님의 계명을 지키지 않은 종들이 살아갈 그 바깥 어두운 곳이라고 말씀하신 곳은 지구가 아닌 다른 행성을 가리키고 있는 것이 아닌가 분별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보고 말씀에 근거한 것이 아닌 상상을 한다는 것이 탐탁하지 않아 말씀드리기를 꺼렸지만 이제 그 부분에 대해서도 한번 묵상해 보셨으면 합니다.


다시 돌아가서 하나님께서 예정하신 부분은 분명히 있습니다. 다만 모든 것을 예정하신 것은 아닙니다. 그 분께서 예레미야를 태에서 짓기도 전에 아셨다는 것은 그 분께서 아시고 예정하신 백성이 분명 있다는 것을 드러내고 계시는 것이며,


(5) "내가 뱃속에서 너를 짓기 전에 너를 알았고 네가 태에서 나오기 전에 너를 거룩하게 하였고 너를 민족들의 선지자로 정하였노라." 하시기에-예레미야1장


또한,


(11) 모든 것을 그 자신이 의도한 대로 행하시는 이의 목적을 따라 우리가 예정되어 그 분 안에서 유업을 받았으니-에베소서1장


이 말씀을 볼 때도 그 분의 택하신 자녀들이 있음을 가르쳐주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들간에 일어나는 온갖 일들과 모든 행하실 일들, 그리고 구원받는 모든 사람들까지 이미 예정하셨다라는 것은 성경의 또 다른 구절들과 배치되기에 이 역시 비진리가 되는 것입니다. 대표적으로 여기서는 에스겔33장 17절 이하와 예레미야26장 1절 이하를 보겠습니다.


(18) 의인이 자기 의로부터 돌이켜 죄악을 저지르면 그가 그것으로 인하여 죽을 것이라.

(19) 그러나 만일 악인이 그의 악에서 돌이켜 적법하고 옳은 일을 행한다면 그는 그것으로 인하여 살리라.-에스겔33장


(2) 주가 이같이 말하노라. 너는 주의 집의 뜰에 서서 주의 집에 경배하러 온 유다의 모든 성읍들에게 내가 너에게 명하여 그들에게 하게 한 모든 말을 고하며 한 말도 빼지 말라.

(3) 그들이 듣고 각자 자기의 악한 길에서 돌아서면, 내가 그들의 행위의 악함으로 인하여 그들에게 행하고자 한 재앙을 돌이키리라.-예레미야26장


義人(의인)과 惡人(악인)과 또 내리실 災殃(재앙)까지 미리 정해놓고 이런 말씀을 하셨다면 공의의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또 더불어 창세에 타락한 그들을 물로 쓸어버리실 것을 결심하시면서 恨歎(한탄)하셨던 것도 모든 것들이 예정되어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이며, 그분의 섭리안에서 그 분의 뜻대로 역사를 이루어 나가고 계신다, 라는 것을 가르쳐 주시는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께서 하나님자신을 계시하시기 위해 행하신 또 다른 일들도 분명 있습니다. 바로 그 분께서 절대적인 神(신)이심을, 그리고 또한 완전한 人子(인자)이심을 그 분의 백성들에게 가르쳐 주시기 위해 행하신 일들 말입니다.


그동안 많은 분들이 이 예정론을 가지고 다퉈 왔습니다. 한편에서는 예정론이 맞다라는 것으로 또 다른 한편에서는 예정론은 말도 안된다, 라는 식으로 말입니다. 생각해 보면 서로 옳은 것을 가지고 싸운 것입니다. 예정하신 부분도 있고 그렇지 않은 부분도 있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 채 말입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이 예정론은 전지전능과 결부되어 있었기 때문에 그 다툼이 쉽게 해결될 수 없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 두 가지 모두 하나님의 일이시며 그 분을 알리시기 위한 단편적인 부분이었다는 것을 이제 주의 백성들은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이 글이 쓰여진 이유는 믿음이라는 것이 들고 남이 있는데 혹시 나갔을 때 주님오시면 어떡하느냐라는 의문때문이기도 하며, 모든 것이 예정되어 있다면 하나님을 찾는 것이 과연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 일 것입니다. 말씀을 보는 사람들 가운데서 혹시 그들이 예정되어 있지 않다면 이렇게 연구하고 믿는 것이 무슨 필요가 있겠느냐라는 것이겠지요. 그런 이유로 바울사도는 너희안에 그리스도가 계신 것을 알지 못하느냐, 라고 하며 로마서등을 통해 불안해 하는 성도들에게 확신을 심어줬던 것입니다.


구원의 기회는 누구에게나 있고 또 누구에게나 동등하게 주어질 것입니다. 말세를 사는 세상 모든 사람들 가운데 선택받아 들림과 승천과 휴거에 들어 천년왕국에 참여하지 못한다 할지라도 그 나라에 들어가지 못한 사람들이 모두 불못에 들어가는 것은 아닙니다. 그들은 마지막전쟁인 곡과 마곡전쟁 뒤에 있을 백보좌 심판때 다시 살아나 그 양심과 행위에 근거해 심판을 받고 구원여부가 결정될 것입니다. 다시 살아난 그들 중에 太半(태반)이 불못에 들어가지 않습니다. 구원의 기회는 누구에게나 열려 있기 때문입니다. 그 분께서 창세기5장에서 생명의 피를 다시 찾으실 것이라는 말씀은 그들의 생명을 모두 다시 살리실 것이라는 그 분의 의지가 들어 있는 것임을 알고, 또 그분께서 예비하신 것은 재앙이 아니요 화평임을 안다면, 이제 세상에 태어나 고통받았거나 어려움 당하며 살았던 열방의 모든 사람들이 되살아나, 그 분을 아는 지식이 물이 바다를 덮음같이 충만한 그 나라에서 위로를 받게 된다는 그 분의 예정하심과 창조목적을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 분의 생각을 우리는 압니다. 바로 이런 구절들 때문이지요.


(11) 이는 내가 너희를 향하여 생각하는 그 생각들을 내가 앎이니, 곧 화평의 생각이요 재앙이 아니라. 기대하던 끝을 너희에게 주리라. 주가 말하노라. -렘29장


이 구절을 통해 묵상해 보면 민족적인 이스라엘에 하신 말씀이기도 하시면서 동시에 주의 백성들에게도 하시는 말씀이며, 또 주님을 알지 못했으나 하나님께서 담아주신 양심에 비추어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도 하시는 말씀입니다. 사랑의 하나님께서는 세상 모든 민족들을 사랑하십니다. 앞선 글들에서 이미 언급한 적이 있지만 그 분의 이름을 들어보지 못했는데 믿지 않았다고 무조건 불못에 던져 넣으시는 하나님은 아니시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종교다원주의와는 성격이 다릅니다. 종교다원주의는 모든 종교를 믿는 그들이 자신들이 믿는 신들에 의해 구원을 받는다는 것이고, 이 주장은 그들 모두가 각자의 소신대로 또 그들에게 주어진 환경대로 종교를 믿고 있기는 하지만 결국 그들 모두를 심판하는 것은 絶對主(절대주) 하나님이심을 나타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부분 그 경계가 상당히 曖昧模糊(애매모호)해서 분별이 어려울 지라도 확실하게 구별하실 수만 있다면 별다른 거부감은 없으실 것이라 믿고, 또 앞선 글들에서도 이미 어느 정도 표명을 했던 터라 이해하실 것이라 생각하며 이만 글을 마치겠습니다. 


혹시 미진한 부분이 있었다면 댓글로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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