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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시록관련/성경교제관련

공평한 잣대

by 디클레어 2012. 1. 11.

공의란 무엇인가?



공의와 정의가 무엇인가 알아보기 위해 먼저 한글사전과 영어사전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공의(公義)【명사】

1. 공정한 도의.

2. 선악의 제재(制裁)를 공평하게 하는 하나님의 적극적인 품성의 하나.


정ː의 (正義)【명사】

1. 올바른 도리.

2. 바른 의의.


‡justice [dʒʌ́stis] n.

① U 정의(righteousness), 공정, 공평, 공명정대(fairness).

② U 정당(성), 옳음, 타당(lawfulness), 온당; 조리, 당부(常否).

③ U (당연한) 응보; 처벌.


‡judgment, 【영국】 judge- [dʒʌ́dʒmənt] n.

① U 재판, 심판.

② C 판결; (판결 결과로) 확정된 채무; (채무) 판결서.

③ U 판단, 판정, 감정; 비판, 비난.

④ U 판단[비판]력, 견식, 사려분별, 양식.

⑤ C 의견, 견해.

⑥ (the J-) 〖종교〗 최후의 심판(the Last Judgment).

⑦ U 〖성서〗 정의, 공정.

⑧ C (신의 판가름에 의한) 천벌.


보시면 아시겠지만 공의란 공평하게 모든 사람을 똑같이 의롭게 심판하신다는 것을 뜻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또 거기에 불가피하게 따라붙는 정의라는 것도 사람에게 양심을 주신 그 분의 의도대로 공의를 판단하는데 있어 올바른 것이 어떤 것인지를 알려주는 잣대역할을 하는 것이라 볼 수 있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자신을 말씀하시면서 공의의 하나님이라고 하셨는데, 어떻게 계시하셨는지 말씀 몇 절만 보도록 하겠습니다.


이사야61장

(8) 이는 나 주가 정의(공의)를 사랑하고 내가 번제를 위해 강도질하는 것을 미워함이니, 내가 진리로 그들의 일을 인도하고 내가 그들과 더불어 영원한 언약을 세우리라.

(8) For I the LORD love judgment, I hate robbery for burnt offering; and I will direct their work in truth, and I will make an everlasting covenant with them.


예레미야9장

(24) 그러나 자랑하는 자는 이것으로 자랑할지니 그가 깨달아 나를 알아서 내가 이 땅에서 자애와 공의와 의를 행사하는 주임을 아는 것이라. 이는 내가 이 일들을 기뻐함이라. 주가 말하노라.

(24) But let him that glorieth glory in this, that he understandeth and knoweth me, that I [am] the LORD which exercise lovingkindness, judgment, and righteousness, in the earth: for in these [things] I delight, saith the LORD.


에스겔45장

(9) ○ 주 하나님이 이같이 말하노라. 오 이스라엘의 통치자들아, 너희는 그 일이 충분하도록 하라. 너희는 폭력과 약탈을 제거하고 공의와 정의를 시행하여 내 백성으로부터 너희는 강제 징수를 그만둘지니라. 주 하나님이 말하노라.

(10) 너희는 공평한 저울들과 공평한 에바와 공평한 밧을 쓸지니라.


미가3장

(8) ○ 그러나 진실로 나는 주의 영에 의하여 권능과 공의와 능력으로 충만하며, 야곱에게는 그의 죄과를, 이스라엘에게는 그의 죄를 알리리라.

(9) 너희 야곱 집의 우두머리들과 이스라엘 집의 통치자들, 곧 공의를 싫어하고 모든 공평을 왜곡하는 자들아, 내가 너희에게 간구하노니 이것을 들으라.


스가랴9장

(9) ○ 오 시온의 딸아 크게 기뻐하라. 오 예루살렘의 딸아, 소리지르라. 보라, 네 왕이 네게 오시나니 그는 공의로우시며 구원을 지니셨고, 겸손하시며 나귀를 타시니 나귀의 새끼인 어린 나귀니라.


이렇듯 하나님은 스스로 공의로우신 하나님이심을 그 분의 말씀안에서 증명하고 계십니다. 그 분께서 권면하는 것을 보십시오. 공평한 잣대로 공의와 정의를 실행하라고 하십니다. 이 말씀들은 곧 그 분께서 공평한 것을 좋아하시고 편협한 것은 가증히 여기신다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그것을 근거로 옛날 이야기하나 하겠습니다.


어떤 나라에 재산이 풍족한 부자 한사람이 살고 있었습니다. 얼마나 부자였는지 그가 가진 재산은 그가 일천 번 태어나 죽을 때까지 매일 온 동네 사람들을 불러다가 상다리 부러지는 잔치를 벌인다 해도 다 못쓸 만큼의 엄청난 재산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다복도하여 정숙한 아내와 건강한 다섯 아들과 또 어여쁜 딸도 다섯이나 있었습니다. 그들의 자식들은 모두 장성하여 결혼도 하였으며 각자의 일을 하고 있었고, 막내아들만 아직 학생인 고로 그가 데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에 어느 날 생각하기를,


“내가 언제 죽을지 모르니 내 유산을 물려 줄 아들을 미리 정해 두어야겠구나, 그런데 내가 큰 아들을 특히 사랑하니 어찌 할꼬, 그 녀석에게만 유산을 물려주고 싶으니 말이야.”


그렇게 생각하던 어느 날, 드디어 그는 마음의 결정을 내리고 자식들중에서 그 맏아들만 따로 불러 이렇게 말을 했습니다.


“아들아, 너에게 내 모든 재산을 물려주고 싶구나. 내가 너만을 사랑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런데 그 재산중에 얼마정도는 분명히 네 동생들도 달라고 할 것이다, 그래서 내가 꾀를 하나 냈다. 내일 정오에 너희들, 곧 네 남동생들과 네 여동생들을 불러놓고 청을 하나 할 것이다. 내가 먹고 싶은 음식을 알아내서 만들어 가져오는 아이에게만 내 재산을 물려 주겠다, 라고 말이다. 그리고 공평한 듯 아무도 모르게 그 음식이름을 편지에 적어 봉투에 넣어 두고 각자가 만든 음식을 가져 오면, 그 때 모두 앞에서 봉투를 개봉해서 결정을 하도록 하겠다고 말이다. 사랑하는 아들아, 내가 그 곳에 국수라고 써 놓을테니 네가 그 요리를 해서 가져오려므나, 네 동생들은 그것을 알지 못할 것이니 내가 가진 모든 재산은 다 너의 것이 될 것이다”


그러자 맏아들이자 이 집안의 장손인 큰 아들은 그것이 마땅하다는 듯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알겠습니다 아버지, 아버지의 뜻대로 그 재산은 장남인 제가 가지겠습니다. 제가 우리 가문의 대를 이어 나가야 하니까요.”


그리하여 다음 날, 아버지가 마련해 준 집들에서 나름대로 열심히 살고 있었던 맏아들의 형제 자매들은 갑작스런 아버지의 호출로 인해 정오를 기해 한 집에 모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중에서 부자아버지의 둘째아들은 연락이 되지 않아 오지 못하고 다섯째 딸은 영문을 모르고 중요한 선약이 있다, 해서 참석을 못하게 되었고 , 그리고 막내아들도 아버지의 명령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친구들과 어울리느라 이 모임에 참석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런 사정들과는 상관없이 이 부자는 모여 있는 아들과 딸들만을 향해 미리 작정해 둔 말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아이들아 내가 이제 살 날도 얼마 남지 않아서 너희에게 재산을 공평하게 나눠 주려 하는데 내 생각에는 아무래도 너희 모두에게 똑같이 나눠 주는것은 재산관리도 어렵고 또 마땅치도 않아서 내 마음을 제일 잘 아는 자식들에게만 재산을 상속해 주려고 한다. 이건 너희가 반대를 해도 어쩔 수 없다. 나의 결정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선택은 내가 지금 이 순간 가장 먹고 싶은 음식으로 하겠다. 그러니 어떤 요리사를 부르던지 혹은 너희가 직접 만들던지, 내가 먹고 싶어 할 것 같은 요리를 만들어서 내 앞으로 가져 오렴. 그럼 내가 보고 결정을 하는데 혹시라도 누구에게나 불만이 없도록, 그리고 모두에게 공평하도록 내가 먹고 싶어 하는 음식을 아무도 모르게 이 편지지에 적어 두었다. 이것을 봉투에 넣어 두었다가 너희가 이곳에 음식을 가져오면 모두가 있는 앞에서 개봉을 해 내가 먹고 싶었던 것을 가져오는 자식들에게만 재산을 분할해 주도록 하겠다”


라고 말입니다. 그러자 그 말을 듣고 있던 셋째 딸이 어버지의 결정에 근심하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지금 이곳에는 둘째 오빠와 다섯 째, 그리고 막내가 연락이 안 되서 오지 못했는데, 그들도 참여해야 하니까 요리는 내일까지 해 오는게 어떨까요? 아빠, 그게 공평할 것 같은데요”


라고 말입니다. 그러자 그 말을 들은 아버지는 매우 단호하게 말했습니다.


“ 이것은 나의 결정이고 또 이곳에 참석하지 못한 애들은 그 애들의 사정일 뿐이다. 그 아이들이 어떤 사정이 있었던 간에, 그것이 비록 운이 없었다 해도 마찬가지다. 나의 말을 듣지 않았으므로 이미 자격을 잃은 것이다. 지금부터 저녁식사인 여덟시까지 음식을 만들어 오던지 아니면 포기하던지 너희들 마음대로 하려무나, 음식을 해 오지 않은 아이는 상속을 아예 포기하는 줄 알겠으며, 그 아이는 가진 것도 빼앗기고 길거리에 나 앉게 될 것이다”


아버지께서 너무 완고하게 말씀하시자 그 아들과 딸들은 어쩔 수 없이 물러 나올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맏아들을 중심으로 한마디씩 하기 시작했는데 대개가 이런 의견들이었습니다.


“아버지께서 고집이 너무 세셔서 말을 못하겠다. 그래도 우리끼리 약속하자, 누가 받더라도 아버지 돌아가시면 공평하게 나누자고 말이야, 형님이 장남이니까 20%정도 가지는 것으로 하고 나머지로 우리가 의논해서 공평하게 나누는게 어떨까?”


라는 것이 주된 내용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을 알고 있는 맏아들은 단호하게 거절했습니다.


“그건 안 돼, 옳지 않아 그건 아버지의 명령을 어기는 것이라 나는 따를 수 없어, 우리는 자식들로서 아버지의 결정을 존중해야만 해. 이건 권위에 관한 거야, 나는 만일에 너희들 중 누가 아버지가 드시고 싶은 음식을 해오는 사람이 있다면, 나는 거기에 승복할 뿐더러 아버지의 결정을 존중하여 재산분할요청도 하지 않을 거야, 그리고 내가 살고 있던 집도 아버지의 말씀대로 그에게 돌려 줄거구, 그건 너희들도 마찬가지여야 할 거야. 그러니 엉뚱한 소리들 하지 말고 혹시 안 되거든 열심히 일해서 살 생각들 해. 찡찡거리지 말고.... 나는 시간이 없으니 빨리 나가서 준비나 해야겠다”


라고 말하며 쌩하니 나가 버렸습니다. 그러자 남아있던 동생들도 부랴부랴 하던 대화를 멈추고 각자 음식을 준비하기 위해 흩어졌습니다. 드디어 약속한 시간이 다가오고 한 사람 한 사람씩 음식을 준비하여 모여들기 시작했습니다. 때 마침 늦게 연락을 받아 아버지를 보기위해 왔던 둘째 아들, 다섯째 딸, 그리고 막내 아들은 영문도 모른 채 벌어진 일들을 보고, 또 자초지정을 듣고 너무 억울하기도 해서 읍소(泣訴)를 위해 아버지에게 들어갔습니다. 먼저 둘째가 한마디 합니다.


“아니, 아버지, 저는 연락도 못 받아서 참석을 할래야 할 수가 없었는데 어떻게 저만 쏙 빼놓고 이러실 수가 있습니까? 저희들에게도 기회를 주십시오. 너무 억울합니다”


그러자 다섯째 딸이 둘째오빠 말을 거듭니다.


“아빠, 그건 오빠말이 맞아요. 저도 이미 중요한 약속이 잡혀 있어서 도저히 뺄 수 없는 상황이었어요. 이런 중요한 얘기인줄 알았다면 어떻게든 참석했겠죠. 도대체 왜 미리 말씀안하셨어요”


그러자 이번에는 막내도 한 마디 합니다.


“아버지, 이런 중요한 말씀을 어떻게 일언반구 저희들과 한 마디 상의도 없이 결정하실 수가 있나요. 그럼 저는 이제 어떻게 공부하고 어디서 자라는 말씀이신가요”


그러자 아버지는 눈 하나 깜빡이지 않고 대답했습니다.


“너희가 연락이 안 되었던 것은 너희 사정이고, 그 결정은 내가 내린 것이다. 그리고 이미 말을 했기에 이 결정은 번복될 수도 없다. 너희는 기회를 잃었고 그건 너희들이 감당해야할 몫이다. 어쩔 수 없는 거다”


라고 말입니다. 그들은 어쩔 수 없이 아버지의 재산을 포기해야만 하는 처량한 신세가 되었습니다. 억울하고 약도 올랐지만 이미 늦은 일이었고 되돌릴 수도 없었습니다. 그들은 자칫 무일푼으로 길거리에 나 앉게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살고 있는 집도 아버지 소유였고 역시 그들이 누리고 있던 모든 것들도 아버지의 재산으로 말미암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이미 큰 형님의 말을 전해 듣고 있었고 형님이 재산을 차지하면 내놓을 수 밖에 없다, 라는 것으로 모두 암묵적인 동의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도 알고 있는 터였습니다. 너무 억울하고 허무하기도 했지만 방법이 없었습니다. 달리는 방법이 없어서 제발 맏아들만 당첨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었습니다.


이제 드디어 각자가 만든 음식들을 차려놓고, 아버지를 부르러 웃음을 감추며 큰 아들이 들어 왔습니다.


“아버지 준비되었습니다. 가시지요”


그러자 그 부자는 봉투를 꺼내들고 음식이 준비되어 있는 곳으로 나와 각자 자신들이 준비한 음식앞에 서 있는 아들과 딸들을 향해 눈길을 보낸 후, 마지막으로는 큰 아들이 해 온 요리를 보고 만면에 웃음을 띠며 봉투를 꺼내 들었습니다. 다른 자식들은 모두 아버지의 까다로운 식성을 위해 일류요리사의 음식들을 준비한 터여서 큰 아들이 준비한 국수 한그릇에 의아함을 가지고 있는 상태였습니다.


“이제 누가 가장 내 마음에 합당한지 이 봉투를 개봉하도록 하겠다. 여기 쓰여져 있는 것은 나의 결정이며 따라서 절대로 번복될 수 없다. 그러니 어떤 결과가 나오더라도 모두 승복하기 바란다”


그리고 큰 소리로 그 먹고 싶었다던 음식이름을 얘기했습니다.


“그 음식은 국수였다, 그러므로 나의 마음을 가장 잘 알고 있었던 자식은 맏이로 결정이 났고, 너희는 국수 비슷한 것은 하나도 준비하지 않았기에 나의 모든 재산을 큰 애에게만 주도록 하겠다”


하며 글이 쓰여져 있었던 편지지를 내밀었습니다. 그것을 확인하고 순식간에 길거리에 나 앉게 된 동생들은 난리가 났습니다.


어떻게 이럴수가 있나? 이건 사기다. 무슨 수로 형은 그토록 정확하게 알 수가 있었단 말인가? 이건 아버지와 형이 우릴 속인 것이다. 국수처럼 간단한 음식이라면 우리도 얼마든지 만들 수 있다. 아무리 아버지이시긴 하지만 이것은 너무한 결정이다. 형님한테만 미리 그 국수라는 것을 알려주고 우리에게는 입도 벙긋하지 않으신 채 대결을 하게 하시면 우리가 어떻게 이길 수 있단 말인가? 이건 처음부터 말도 안 되는 게임이었다, 승복하기가 힘들다. 너무 억울하고 열 받는다....


그런 푸념의 시간이 흐른 후에 잠시 격정이 가라앉은 그들은 곧 큰 아들인 맏아들에게로 가서 부탁을 했습니다.


"형님, 할 수 없네요. 아버지의 결정이니 억울하더라도 따라갈 수 밖에요. 그런데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집은 그냥 우리가 살게 해 주세요. 안 그러면 당장 집을 얻을 여유도 없는데 길거리에 나 앉아야 해요. 이 추운 겨울에요“


동생들은 피를 나눈 형이 그것만은 들어줄 줄 알고 부탁을 했으나, 큰 아들은 냉정하게 그들의 청을 거절했습니다.


“너희들은 아버지의 사랑을 받지 못했고 나는 사랑을 받았다. 그래서 아버지께서는 나에게 그 분의 재산을 남기신 거구 말이야, 나는 아버지의 유지(有志)를 받들어 그 재산을 잘 관리해야만 하겠다. 아버지는 사랑하는 아들인 나에게만 재산을 주셨는데, 이건 내 결정이 아니고 아버지의 결정이다. 나는 그것을 따르고 지킬 뿐이다. 그러니 나한테 하소연해봐야 아무 소용이 없다. 자, 일주일의 기한을 줄테니 너희들이 살고 있던 집을 비우렴, 모두 팔아치우고 아름다운 섬 하나를 사서 이사갈거야, 아버지와 함께 이미 결정을 내렸으니 그렇게 알고 있도록 하고, 기한은 일주일이다”


“그럼 우리는 어떻게 살라구”


동생들은 절규했습니다. 그러자 그는 절규하는 동생들을 향해 다시 한 마디 했습니다.


“그거야 너희들 사정이지, 내 알바 아니니 알아서들 해야지. 길거리에 나앉던 말던 나와 무슨 상관이니? ”


냉정한 맏아들의 말을 끝으로 이제 이야기는 끝이 났습니다.


 혹시 여러분들은 이 엄청난 재산을 가진 부자에게서 공평(公平)이라는 것을 찾아 볼 수 있겠습니까? 또 이 맏아들에게서 피를 나눈 형제들을 사랑하고 아끼는 마음이 조금이라도 느껴지셨는지 모르겠습니다. 아마도 그런 분은 없었을 것입니다. 단언하기는 안됐지만 이 맏아들의 말과 행동이 바로 요즘 그리스도인들이라 불리는 사람들이 하는 말이고 행동이며, 이 맏아들이 존중하고 사랑한다는 아버지가 부자의 공평함을 가지고 세상을 통치하신다고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바로 그리스도인들이 그런줄만 알고 믿고 있는 그 하나님 말입니다. 그리고 동생들은 세상각국에서 나름 열심히 살고 있는 이방인들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그들은 본시 아담과 하와의 자손들이요, 또 노아의 아들들로서 결국 그리스도인들과도 혈통으로 이루어진 핏줄인 것임을 인지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들은 앞에 나열해 놓았던 성경구절들과 비교했을 때, 이 부자가 하는 행동이 과연 공의를 행하시고 공평한 저울을 기뻐하신다는 하나님으로 볼 수 있겠습니까? 가만히 묵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아마도 모든 아들들이 바라는 아버지의 상은 결코 이 부자와 같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황당하게도 그리스도인들은 이 부자가 바로 하나님이실 거라고 굳게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오히려 그것은 절대적으로 옳고 또 그렇게 하신다고 해도 그것은 그분의 주권일 뿐이라고 힘주어 말합니다. 자신은 큰형님의 위치를 차지했다는 것이겠지요. 그러니 동생들은 어찌 되도 상관없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자랑스럽게 그 분이 그렇게 하시겠다는데 누가 말리겠느냐고 합니다. 그 말은 맞습니다. 그러나 이 부자처럼 행동하는 하나님은 적어도 앞서 성경에서 인용했던 공평과 정의로 세상을 다스리시는 것을 기뻐하신다는 공의의 하나님이라고 볼 수는 없을 것입니다. 만일 그렇게 말하는 그리스도인이 있다면 그는 정의가 뭔지 공평이라는 것이 뭔지 모르는 어린 아이보다 못한 분별력을 가진 사람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비밀을 압니다. 바로 그 분을 믿음으로써 구원에 이른다는 것을요. 그런데 비그리스도인들은 너무도 단순한 그 진리를 모릅니다. 단지 그것을 몰랐던것 뿐인데 그들은 집을 내놓고 바깥 춥고 어두운 곳으로 쫒겨나야만 하는 이 동생들처럼, 일고의 여지도 없이 지옥에 들어갈 사람들이라고 그리스도인들은 말하고 있습니다. 또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실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도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인 예수그리스도를 발견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면서요. 그러면서 자신들은 하나님을 올바로 알고 있다고 말합니다. 아마도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서 기가 막히시지 않을까요? 자애와 공의와 의를 행사하는 주임을 아는 백성을 기뻐하신다는 하나님께서 자애와 공의와 의와는 거리가 한참 먼, 이 편협한 부자같은 분이라고 한다면 하나님께서 자신을 그렇게 여기는 이 백성들을 기뻐하시겠는가 말입니다. 또 사랑하는 아들이라고 말씀하신 큰 아들이 피붙이 동생들을 불쌍히 여길 줄도 모르는 사람이라면 과연 이런 맏아들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겠습니까? 그게 과연 하나님의 공의일까요?  저는 결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공의와 정의로 세상을 통치하신다는 하나님께서 그 믿음의 비밀을 알지도 못하고 살았던 이방백성들을, 그나마도 양심에 맞게 살려고 노력했던 사람들에게조차도 단 한번의 기회도 주지 않으시고, 또 믿으면 구원받는다는 그 단순한 비밀을 확인조차 해 주지 않으신 채, 모두 불못에 처 넣으실것이라고 믿고 있는 것이 지금 그리스도인들의 믿음이라는게 놀랍지 않으십니까? 저도 지금까지 그렇게 알고 있었다는 것이 너무나 죄송해서 말도 못하고 얼마전에 눈물로 용서를 빌었습니다.


물론 내가 잘 믿었다거나 또는 하나님께서 나를 선택하셔서 하나님을 믿고 있다라는 말씀도 나올 수 있고, 복음이 들어갔는데 그들이 받아들이지 않았으니 모두 불못에 가는 것이 아니냐? 라고 합리화시키고자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대답은 너무나 갖가지 일어나는 경우에도 적용할 수 있는 답변은 아닙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나라의 예를 들면 나자마자 죽는 아이도 있고 어미 뱃속에서 죽는 아이도 있으며 이성이 자라기전에 데려가시는 아이도 있으며 아직 세상을 경험하지 못하고 죽는 소년도 있습니다. 내일이면 복음을 들을 수 있었는데 그 전날 피치 못할 사고로 죽을 수 있는 아이도 있을 수 있으며, 전쟁중에 피어보지도 못하고 죽는 청년도 있습니다. 정신병을 앓다가 죽는 사람도 지옥에 가야하고,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을 들으면 얼마든지 마음이 돌아서서 하나님을 믿을 수 있는 사람들도 다수가 있을 수 있음에도 단지 그 복음을 듣지 못했다는 이유로 지옥에 가야하고, 또 아직 마음에 준비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복음이 들어갔을 때, 딱 한번 거부했는데 다음 날 죽어 지옥에 간다라고 한다면 그 많은 경우들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그런 그들이 억울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그 억울한 사람이 바로 여러분일 수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일들을 행하시는 하나님께서 공의로우신가요? 이런 일을 행하시는 분이 사람들에게 감정들과 양심을 심어주어 정의와 공의를 느낄 수 있게 하신 절대주 하나님께서 강조하신 공의이겠습니까?


이제 결론입니다.

오직 예수그리스도를 통해 아버지께 갈 수 있음은 맞습니다. 그런데 그 말씀을 확대해서 오직 그 분을 믿고 아는 자만 천국에 가고 나머지는 모두 지옥행이다. 라고 단정짓지는 말아야 합니다. 상급에 차등이 있듯이 형벌에도 차등이 있습니다. 불못은 타락한 천사들을 위해 하나님께서 준비한 것이고 그곳에는 사탄에 동조하고 경배하는 창세로부터 어린양의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되지 못한 사람들만 가는 곳입니다. 그 수에 이 다수의 불쌍한 형제들을 포함시켜서야 되겠습니까? 잘 몰랐던 이들은 비록 하나님께 선택받지는 못했지만 선택된 왕들과 제사장들에 의해 다스림을 받는 천국백성이 되는 것을 여러분께서 허락하시면 안 되겠습니까? 또 불못이 아니고 바깥 어두운곳에 쫓겨나는 종들도 있습니다. 이렇듯 불못에 들어가지 않고 그 어두운 곳으로 하나님께서 내 쫓으면 안되겠습니까? 여러분들은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시겠다면 반대하시겠습니까?  천국에 가면 모든 사람들이 똑같을 것이다, 라는 것은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착각하는 것 중의 하나입니다. 그런 사람들이 말하는 천국은 너무 단순해서 별로 재미가 없습니다. 예를 들지는 않겠지만 천국에서는 그리스도인들이 상상하는 모든 즐거움과 기쁨들이 이루어질 곳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런 천국의 즐거움들을 하나님께서 계시하시지 않으셔서 비록 그 비밀을 알지는 못했으나 그 분께서 넣어주신 양심에 비추어 살아왔던 형제들에게도 주시겠다고 한다면 여러분들은 반대하시겠습니까?


제가 아는 한 하나님께서 주신 양심과 이성을 가진 그리스도인들이라면, 아버지께서 그렇게 하시겠다고 하면 반대하는 성도는 단 한사람도 없을 것으로 믿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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