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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환난전 휴거 (6) - 요셉과 모쉐

by 디클레어 2010. 1. 13.

환란전 휴거 (6) – 요셉과 모쉐

 

성경의 모형적인 가르침 역시 교회가 환란 전에 휴거되어야 함을 보여 주고 있다.요셉은 그리스도의 모형이다.그는 형들에게 버림을 받은 후이방인인 "그의 신부"아스낫과 결혼하였다.그 때는 기근이 있기 전으로서 기근은 형제들이 심판 받는 때를 가리키므로 대환란 기간을 의미한다.즉 그 기간은 그리스도께서 그의 형제들인 유대인들에게 배척을 받으신 때이다. 또한 그리스도의 모형인 모세도 그의 형제들에게 배척을 받은 후 이방인 신부를 맞아 들였다. 이 때는 파라오에게 환란을 겪기 전이었다 (출2:23-25)

 

위와 같은 글은 환란전 휴거를 주장하시는 분들에게서 흔히 나오는 성경해석방식입니다. 이제 그런 해석은 성경을 매우 대충대충해석하는 방식이라는 점을 설명해드리겠습니다.

 

1) 요셉

요셉은 예수 그리스도의 모형이라고 불리웁니다. 그는 그의 형제들, 유대인들에 의해 박해를 받았으며, 은 20에 팔렸으며, 이방인 신부를 취하였으며, 당시에 신과 같았던 파로의 권한을 대행하여 마치 하나님 아버지를 대행하는 예수님같았습니다. 그런데 그의 생애에 가장 암울했던 시기는 역시 그가 시위대장의 아내의 모함으로 감옥에 갇혀있었을 때였을 것입니다. 즉 그 시기는 그에게 최대의 환란기였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자비의 하나님은 요셉이 감옥에 들어가는 것을 막지 않으시고 그에게 환란을 허락하셨습니다. 다만 그 감옥에서도 하나님은 그에게 자비와 긍휼을 베푸시사 간수가 그에게 긍휼 베푸도록 하셨습니다.(창 39:21-23)

 

이와 같은 하나님의 자비하심과 보호하심은 오늘날에도 성도들이 충직한 생활을 할 때 나타납니다. 그렇다고 그 훌륭하고 착한 성도들이 휴거되고 있는 것도 아닙니다.

 

요셉이 형들을 찾아 나선 것은 십칠세때로 추산되며(창 37:2) 그때에 이집트로 팔려간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가 몇 년 동안이나 포티발의 집에서 노예생활을 했는지는 알수 없습니다. 그가 파로 앞에 총리로 세움을 입었던 때는 30세때였습니다.(창 41:46)

그러므로 요셉의 고난의 세월은 13년간이었다고 추산할 수 있습니다. 요셉은 7년동안의 풍년 시기를 보냈으며, 다음 7년간의 흉년기간중에 그의 형제들과 가족들을 만납니다.

 

그가 그의 형제들에게 자신이 요셉이라는 것을 밝히고 아버지를 모셔오도록 말한 것은 기근이 두해 지난, 앞으로 5년 더 남은 시점이었습니다(창 45:11).

그리하여 야곱(이스라엘)과 그의 모든 가족이 이집트로 내려간 시점은 요셉의 나이 39세가 지난 시점이었으리라고 생각됩니다. 즉 30세때 이집트 파로 앞에 섰으며(41:46), 그뒤 곧바로 풍년이 시작되었는지는 알수 없으나 다음해부터 혹은 바로 그 해부터, 혹은 다음 다음해부터 시작이 되어서 7년간 풍년이 진행되었고, 다음의 1년을 지낸 다음 형제들을 만났고 다음해를 보낸 후, 2년간의 흉년이 지난 다음 그의 나머지 가족들과 아버지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여기서 위의 글에서 언급된 아스낫은 포티페라의 딸로서 파로가 중매하여 결혼하게 한 여자이며(창41:45) 그녀는 두 아들을 흉년이전에 낳았습니다(41:50) 요셉은 당시에 매우 행복하였으며 그의 과거를 돌아보고 그로 하여금 그러한 축복을 주신 분이 바로 하나님임을 알고 감사하였으며 그러므로 아들의 이름을 므낫세라하여 하나님이 수고와 아비집을 잊게 하였다고 하였습니다(41:51) 그리고 에프라임을 낳아 하나님이 고난의 땅에서 열매많게 하였다고 하였습니다.(41:52)

 

요셉이 형제들에게 배척을 당한 후 이방인 신부를 취하여 행복을 누린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모형으로서 올바른 비교입니다. 그러나 위에 인용된 글중의 다음 문장은 이것이 휴거와 아무런 상관이 없음을 알려줍니다.

 

그 때는 기근이 있기 전으로서 기근은 형제들이 심판 받는 때를 가리키므로 대환란 기간을 의미한다.즉 그 기간은 그리스도께서 그의 형제들인 유대인들에게 배척을 받으신 때이다.

 

요셉이 살던 땅 이집트가 흉년을 안겪은 것도 아닙니다. 그 땅 또한 기근을 겪었으며 그 환란을 요셉은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명령에 순종하여 대비함으로써 극복하였습니다. 그가 하나님의 예언의 말씀을 무시하고 기근에 대비하지 않았더라면 그와 이집트는 기근을 극복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요셉은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여 환란에 대비하여 7년 기근의 환란을 극복해냈고, 그뿐만 아니라, 많은 이집트인들을 구원하였습니다.

 

이것이 대환란 기간의 상징이라며 환란전에 휴거시키신다는 근거로 해석되기에는 큰 무리입니다. 그의 형제들은 그가 노예생활로, 감옥생활로 13년을 보내는 동안 아마도 요셉의 삶보다 더 나은 삶을 누렸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후 7년동안도 잘 지냈을 것입니다. 따라서 20년 동안 이스라엘 가족들은 그런대로 평온한 삶을 살았다고 추정하는 것이 무리없는 해석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형제들은 환란에 대비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는 귀가 없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이 그들에게는 없었던 것이며 그들은 망할 처지에 있었던 것입니다.

 

요셉에게 7년 기근은 그리 큰 고난의 시기도 아니었습니다. 그가 총리로 있는 한 그의 노예생활 때보다도, 감옥생활 때 보다도 나았을 것입니다. 요셉은 가장 혹독한 세월을 노예생활로, 감옥 생활로 보내야 했습니다. 오늘날에도 교도소 시설들은 많은 어려움을 준다고, 시설이 나쁘다고 불평합니다. 그러나 3800년 전의 이집트 수형시설은 극히 열악한 환경이었음이 틀림없습니다. 그것을 하나님이 면제 시켜주거나 휴거시켜준것도 아니며 요셉은 그 고난을 이겨내야 했습니다. 그는 카나안 땅에서의 평화롭고 유복했던 삶을 그리워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를 즉각 휴거시키시지도, 그곳으로부터 빼내시지도 않으셨습니다.

 

또 한가지 이스라엘의 자손들이 유대인들의 원형으로서 7년간의 고난과 환란을 당했다는 모형이라고 비유하는 것 또한 정확하지 않습니다. 즉 그들은 카나안 땅에서 단지 2년의 흉년만을 겪었을 뿐입니다.(창 45:11) 그리고 그들은 구조되었습니다. 7년을 모두 보낸것도 아닙니다. 그러므로 여기서 유대인들에게 7년 환란을 겪게 하신다는 것과 요셉의 형제들이 7년 환란을 겪었다고 비유한다면 실제 2년만 환란을 겪은 사실을 기억하지 못한 무리한 비유일 뿐입니다.

 

그보다 요셉은 다음과 같이 자기들의 운명을 설명하고 있으며 이 해석은 하나님의 섭리와 일치한다고 분별됩니다.

 

창세기 45장

5 그러나 지금은 걱정하지 마소서, 당신들이 나를 이리로 팔았다고 당신들 눈에 화내지도 마소서,  왜냐하면 하나님이 생명보존을 위하여 당신들에 앞서 나를 보내셨음이니이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가족들의 생명보존을 위하여 요셉을 앞서 보내고자 요셉을 앞서 보내셨다고 해석하고 있습니다. 즉 하나님은 요셉이나 그의 형제들이나 모두를 구원하시고자 요셉을 먼저 보내셨던 것입니다. 그러한 하나님은 요셉이 가장 혹독한 시기를 보낼 때에도 그를 구조해내시지 않고 그로 훈련받게 하신 다음, 그로 하여금 이방인 아내와 결혼하게 하였습니다.

 

이 어떤 내용도 환란이 있기 전에 하나님이 그분의 백성을 휴거시킨다는 논리를 증거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왜 이스라엘 민족을 카나안 땅에서 계속 살게 하시지 않고 이집트 땅으로 이동시키셨을까요?

 

이것은 제가 캐나다에 이민 온 이후로 메시아 유대인들에게서 배우기 전까지는 알지 못했던 사항입니다.

카나안 민족들은 유목민족이었습니다. 이스라엘 가족들 역시 유목민족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민족이 유목민족들 틈에서 살았다면 쉽게 동화되었을 것입니다. 그것이 하몰의 아들 쉐켐이 강간한 사건이 있었을 때 드러났던 문제였습니다(창 34장). 하몰이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34장

9 그리고 너희도 우리와 결혼하고, 너희 딸들도 우리에게 주고 우리의 딸들도 너희를 위해 취하라. 10 그리고 너희도 우리와 함께 거하라 그리고 그 땅이 너희 앞에 있을 것이며, 거기에 너희가 거할 것이며, 거래할 거래하겠고, 거기에 너희는 정착하라.

 

것은 하나님께 큰 위기였습니다! 왜냐하면 그분은 아브라함을 세상 민족들로부터 불러내사 그분의 거룩한 백성이 되게 하시려고 그를 갈대아 우르에서 불러내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계속하여 아브라함의 자손들을 세상민족들로부터 분리시키시고자 유지하셨으며 할례의 언약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하나님이 그토록 힘써 인도해온 것에 반하여 이스라엘 민족은 바로 카나안 민족과 동화될 위기에 처한 것입니다. 그 카나안 민족들은 패역한 백성들이었으며 그로 말미암아 하나님은 그들을 머지않아 심판하실 계획이었습니다.

 

그것은 레비와 시므온 등의 형제들에 의해 제지되기는 하였으나 언제나 그 위험이 상존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 까닭에 하나님은 창세기 38장을 37장과 39장 사이에 끼워넣습니다. 왜요? 하나님이 그렇게 이야기를 중단하고 사이

끼워 넣으실 때에는 그것이 일종의 긴급동의요! 하는 외침이었던 것입니다.

 

38장은 바로 유다가 카나안인 수아의 딸과 결혼한 이후의 이야기입니다. 거기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민족이 바로 카나안인들고 통혼하며 거래하며 친구삼는 것을 보았으며 그것은 하나님의 구원계획에 크게 반하는 것임을 아셨던 것입니다. 사실 이 38장은 엄청 많은 교훈들이 담겨있습니다만 여기서는 다루지 않겠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이스라엘 민족에 앞서 요셉을 먼저 이집트로 보내시고 그들을 분리시키시고자 하였으며 그들을 구원코자 하셨습니다. 그런 사실은 다음의 성경 말씀에서 재확인됩니다.

 

창세기 46장

34 당신들은 말하기를 ‘당신의 종들은 소년시절부터 지금까지 목축의 사람들이었아오니 우리도 우리 아비들도 그러했습니다.’하여 당신들이 고쉔땅에서 거할 수 있도록 하시오, 왜냐하면 이집트인들에게는 양떼의 모든 목자들이 혐오스러움이기 때문이오”하니라.

 

이 말씀은 우리로 하여금 왜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을 카나안 땅에서 이집트 땅으로 이동시키셨는가를 이해하게 하는데 매우 중요한 정보를 제공해주고 있습니다. 즉 이집트인들은 목축인들을 매우 가증스럽게 여겼다는 사실입니다. 그리하여 이스라엘인들은 이집트인들로부터 분리될 수밖에 없었으며, 그들은 고쉔 땅에서 이집트인들로부터 분리된 삶을 살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런 성경적 사실의 측면은 제가 캐나다에 와서 깨달은 진리가운데 가장 큰 소득이었다고 생각이 되어왔습니다. 참으로 하나님은 그분의 백성이 이 세상에 계속 살기는 하되, 그러면서 양육받고 훈련받되, 세상과는 어울리지 않으며 성별된 삶을 살기를 원한다는 사실입니다.

 

이러한 진리는 예수님의 기도가운데서도 재확인된다고 믿습니다.

 

요한 17장

15 내가 구하옵는 것은 당신께서 저희를 세상으로부터 데려가시도록 함이 아니요, 저희를 악으로부터 보전하도록 함이니이다.

 

우리는 세상에 사는 동안 빛이 되며,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아가며 그분의 거룩하심을 본받기 위해 배우고 훈련받아야 하며, 환란을 극복하고 이기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그것이 성경의 가르침입니다.

 

그러므로 이 요셉의 삶에 대한 성경말씀을 통해 우리가 결론 내릴 수 있는 것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요셉은 가장 혹독한 환란의 시기를 노예생활과 감옥생활로 보냈으며 하나님은 그 환란 이전에 그를 대피시키지도, 휴거시키지도 않았습니다.

 

2)     요셉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7년 기근의 환란에 대비하였으며 그것을 극복하였고, 요셉과 같은 훌륭한 지도자들 두었던 이집트는 축복받아 보전되었습니다.

 

3)     이스라엘 민족은 하나님의 말씀이 없어서 기근의 환란에 대비하지 않았으며 그들은 죽음의 위기에 처하였습니다. 그들은 요셉(그리스도의 상징)에 의해 구조되었습니다.

 

4)     이스라엘 민족은 이로 말미암아 2년동안의 환란을 겪었으며 그것은 대환란의 7년과는 다른 기간이었습니다.

 

5)     그러므로 요셉의 삶에 관련된 성경말씀은 하나님이 성도들을 환란에 앞서서 모두 휴거시킨다는 어떤 암시도 주지 않고 있으며 환란전 휴거는 이 대목 성경으로는 입증되지 않음을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2) 모쉐의 삶

 

사실 모쉐의 삶을 들어서 환란전에 성도들은 휴거된다고 주장하는 것은 그의 삶의 어떤 부분을 통해서도 찾아내기 어려울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에 인용된 글에서와 같이 모쉐가 이방인과 결혼한 것이 파로에게서 환란을 겪기 전이었다고 주장하는 글이 있으므로 설명드립니다.

 

그리스도의 모형인 모세도 그의 형제들에게 배척을 받은 후 이방인 신부를 맞아 들였다. 이 때는 파라오에게 환란을 겪기 전이었다 (출2:23-25)

 

이 글을 쓴 분은 이방인 신부와 결혼만 하면 환란전 휴거를 증명하는 것처럼 자꾸만 인용하는 것같습니다!

 

모쉐는 형제들에게 배척을 받아서 이집트 땅을 도망친 것이 아니라, 파로가 모쉐가 이집트인을 죽인 사실을 듣고 모세를 죽이려고 찾았기 때문에 도망쳤습니다(출 2:15) 즉 그의 형제들에 의해 배척을 받아서가 아니라, 파로에게 살인사건이 보고되어 그가 위기에 처했기 때문에 도망친 것이었습니다. 이점에서 위의 글은 처음부터 잘못 해석하며 대충대충 해석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이방인 신부 십보라를 아내로 맞이한 다음 모쉐는 40년의 평화로운 세월을 보냈습니다. 그리고 자녀들을 낳았습니다. 이것이 환란 전에 휴거를 증명합니까?

그렇다면 앞으로 2040년에 대환란이 시작된다면 2000년쯤에 먼저 성도들의 휴거가 있었어야 할 것입니다.

 

모쉐가 파로를 만난 것이 환란을 겪은 것입니까? 모쉐는 파로 앞에 신처럼 보였습니다. 그것이 바로 파로가 모쉐를 즉각 체포하지 못한 이유입니다!

 

4:16

...... 너는 그에게 하나님이 될 것이라.

 

이것이 그에게 환란 당하는 시기였을까요? 그는 파로앞에 하나님의 능력과 위대하심을 증거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는 파로를 이겨냈으며, 이스라엘 민족을 구출해냈습니다. 즉 모쉐는 어떤 난관도 그의 믿음과 하나님께 대한 순종으로 말미암아 이겨낸 것입니다. 그리고 파로는 패퇴했습니다. 그 파로는 홍해바다에서 죽은 것으로 분별됩니다. 모쉐는 환란을 이겨내고 홍해바다를 통과하였습니다. 이것이 성도들의 환란 전 휴거를 증거합니까? 아니면 환란을 통과하고 이겨내는 것을 증거합니까? 탈출기 15장은 미리암의 놀라운 승리의 찬가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모쉐가 파로 앞에 서는 것이 대환란이어서 그를 불러내어 이방인에게 결혼케 하였고 그것이 환란전 휴거의 상징이라고 해석한다면 다시 모쉐를 이집트왕 파로앞에 서게 하신 하나님은 또다시 환란을 겪게 하시는 분입니까?

하나님은 그분의 성도들이 어떤 역경도 이겨내고 승리하기를 바라시며, 그리하여 구약의 성도들을 이스라엘( 하나님을 이겨냄)이라 부르셨던 것입니다. 하나님을 이겨낼 정도이면 다른 어떤 무엇도 이겨낼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러한 모쉐도 휴거되기는커녕 카나안 땅에도 못들어갔습니다. 그는 말하기를

25“ 내가 주께 간구하오니, 나로 건너가게 하소서 요단 건너편에 있는 아름다운 땅과 아름다운 산지와 레바논을 보게 하소서. 하였으나

26 주께서는 너희로 인하여 내게 진노하시어 내게 들으려 하지 아니하시고 주께서 내게 말씀하시기를“그것으로 충분하니 이 일을 더 이상 말하지 말라”(한킹 신명기 3:25-26)

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모쉐는 믿음이 없었던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성경은 모쉐와 같은 선지자가 그후에는 일어나지 않았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신 34:10) 이 말은 아마도 여호수아가 기록한 것으로 보입니다만, 그는 참으로 하나님과 대면하여 말을 나누었던 사람이었으며, 히브리서 11:26은 모쉐에 관해

 

이집트에 있는 보화들보다도 그리스도의 능욕을 더 큰 보화로 여겼으니, 이는 그가 보상 베푸시는 분을 주목하여 보았었기 때문이라.

 

그는 예수 그리스도에 관하여 성경을 썼습니다(요 5:46). 그러한 그도 죽음을 피하지 못하고 죽었습니다.그리고 모압땅 골짜기에 묻혔습니다(신 34:5-6) 그는 휴거는커녕 카나안 땅에도 못들어가고 죽었습니다.

 

이 모쉐의 이야기가 환란전에 휴거를 증거해줍니까?

 

다음에 제가 더 올리는 글들에서 오늘날의 신약교회가 어느 정도의 영적수준에 있는가도 다루어 볼것입니다. 신약교회에는 수많은 문제들을 안고 있는 사람들이 많았으며, 심지어 계모와 음행하는 자들도 있었으며, 입으로는 하나님을 시인하나 행위로는 부인하는 자들도 있었으며 오늘날 우리가 보는 현대교회는 타락의 극치를 달려가고 있는 실정입니다.

 

이들 모두가 환란전에 휴거될 것이라는 명시적인 성경구절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반면에 계시록의 많은 성경구절들은 환란중에도 성도들이 믿음을 지키기도 하며 그 환란을 이겨내고 성도들이 정결케 되어 나오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다음에서 이런 점들을 계속 설명하여 드리겠습니다.

출처 : Shekinah Korea
글쓴이 : 하토브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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