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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시록관련/성경교제관련

동학의 개벽과 서학(기독교)의 종말론

by 디클레어 2024. 9. 15.

 

 작금에 서양학과 반대되는 동양학이라고 불리는 동학에 대한 연구와 토론이 활발해 지고 있다. 그 당시에 천주교의 선교활동이 활발히 이루어진 덕에 그 사상이 우리나라를 집어 삼키자, 몇몇 사람들이 그것에 반대하는 움직임을 가졌고, 특히 그중에 동경대전을 지은 수운 최 재우가 있었다.  또 이것들을 포함해서 말세에 인류에게 어떠한 일들이 일어나는가? 혹은 어떤 일들이 벌어질 것인가에 대한 예언중에 탄허스님을 포함하여, 격암유록을 지은 남사고도 있다.  

 

 이런 것들을 알아보기 앞서 일단 기독교의 종말론에 대해 얘기해 보도록 하자.  탄허스님은 한문으로 된 성경을 외우고 있어서, 불법뿐 아니라 성경에도 남다른 지식이 있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그러나 그가 알고 있는 기독교의 종말론은 마태복음 24장에 국한되어 있었고, 그것을 바탕으로 설파하면서 소위 종말이라 불리는 그날 이후에 어떠한 일들이 벌어질지에 대해서 성경에 기록되어 있지 않다고 말하고 있다. 

 

  여기서 기독교의 종말론은 그렇지 않다고 본인은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이곳에 있는 글들을 살펴보면 제위들께서 너무나 당연히 알게될 것이긴 하지만 장황하게 서술하기는 그렇고 간단명료하게 설명하자면 이렇다. 

 

 일단 그들이 주장하는대로 세상의 종말이라 불리는 시기에는 전염병이 만연할 것이라고 성경에서도 말하고 있다. 

 

계시록6장8절:

 

내가 보매 청황색 말이 나오는데 그 탄 자의 이름은 사망이니 음부가 그 뒤를 따르더라 그들이 땅 사분의 일의 권세를 얻어 검과 흉년과 사망과 땅의 짐승들로써 죽이더라

 

And I looked, and behold a pale horse: and his name that sat on him was Death, and Hell followed with him. And power was given unto them over the fourth part of the earth, to kill with sword, and with hunger, and with death, and with the beasts of the earth.

 

 이 구절은 적그리스도인 사탄이 가진 네 가지 무기를 말하고 있는데, 여기에 기록된 사망이란 것은 온역, 즉 전염병을 가리키는 것이다.  조금 더 살펴보자면 검은 그가 하나님께로 부터 받은 칼이며 이것은 전쟁을 의미하고 흉년이란 것은 말그대로 기아, 즉 굶주림이고, 땅의 짐슴들은 그가 가진 군대, 즉 무저갱으로부터 올라온 네피람, 곧 타락한 천사들과 계시록12장에서 미가엘과의 전쟁에서 패해 땅으로 떨어진 천사들을 아우르는 명칭이다. 이것의 증명은 다니엘 9장 27절과 요한계시록 17장 8절에 의거하고 있으니 숫자로 푸는 요한계시록을 참조하시기 바란다.

 

 또 동학쪽에도 그렇지만 서학에서도, 앞으로 이 땅에는 멸망의 대왕이 온다거나, 미륵보살님 (천주님, 옥황상제, 하느님, 하늘님, 상제님) 이 내려온다고 얘기한다.  동학은 이쯤에서 개벽을 얘기하며 미륵보살을 언급하고 서양쪽에서는  주로 적그리스도인 사탄을 언급하며 말세론을 얘기하고 있다. 

 

 어느 쪽에 더 중점을 두고 얘기하느냐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본인이 보기에는 이 모든 것들은 하나로 이어져 있으며, 같은 얘기를 하면서 서로 다르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일단 동양(특히 우리나라)의 개벽사상의 요지는, 이 세상이 다시 시작된 후에는 모든 사람이 부처, 즉 깨달은 사람이 되어 그 삶에 인,의, 예, 지가 바탕이 되어 평화로운 시기가 될 것이다라고 하고 있는데, 성경은 그것보다 더 상세하게 이사야서를 포함해서 각 예언서에 그 날들에 대해 더욱 구체적으로 언급하고 있다.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충만함으로 인해 사자는 풀을 먹으며 아이가 독사굴에 손을 넣어도 상하지 않을 것이다라는 것이 그 예시이며, 또 그날 들에는 사람들의 나이가 나무의 나이만큼이나  오래 살 수 있게 되어 지혜가 충만해 질 것이라고 기술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한술 더 떠 백보좌심판이 끝난 후에는 천지신명(하나님)의 성전이 이 땅으로 내려와 사람들이 영원히 즐거워하며 살아갈 것이라고 약속까지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동학과 서학이 서로 다르거나 틀리다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며 어느 곳에 더 방점을 찍느냐에 따라, 그리고 사람의 이해에 따라 다르게 느껴질 수 있을 뿐이라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인류전체가 구원 받기를 원하시며, 그러므로 그 일들을 이루어 나가실 것이다.  어떤 이들이 불교를 믿는다고,  이슬람을 믿는다고,  힌두교를 믿는다고, 혹은 또 다른 어떤 종교를 믿는다고 할 지라도, 하나님의 구원계획은 변하시지 않을 것이다.  그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앞선 글들에서도 이것에 대한 입장은 피력해 왔지만, 이제 말세가 점점 다가오는 것을 느끼니, 앞으로 다가오는 일들에 대한 두려움을 이겨내고, 많은 사람들이 마음의 평안함과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잘 지켜내시기를 바라는 노파심에 이 글을 쓰고 있다. 어떤 이들은 이 글을 보고 에큐메니컬운동이라 할 지도 모르겠다. 상관없다. 그런 사람은 내용을 보지도 못하고, 숙고도 하지 않으며 따라서 이 글에 대한 이해도도 현저히 떨어지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이 세상은 앞으로 적그리스도가 받을 7년을 기다리고 있다. 격암유록에 기록되어 있는 소두무족이 아무래도 네피림을 언급한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들이 바로 무저갱에서 올라온 타락한 천사들이 아니겠는가하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에녹서에 보면 천사들중에는 이 땅에 살아가는 백성들을 위해 보냄 바 된 천사들이 있었다고 하는데,  동양에서는 그 표현이 천하대장군, 지하여장군등으로 기록된 것이라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이것을 기록한 표훈천사, 방대하게 보면 태백일사니 삼성기니, 환단고기내의 기록들도 바로 노아로부터 말미암은 지혜였다고 보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 글들에서 언급하는  옥황상제님, 하늘님, 하느님, 상제님들의 표현은 모두 삼신하나님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봐도 틀리지 않다고 하는 것이며 이렇게 동양의 하나님과 서양의 하나님은 동일한 이스라엘의 하나님임을 알아보자라는 것이 이 글의 요지이다. 

 

  또 서학의 역사관은 직선관이고, 동학의 역사관은 순환관이라고 말들을 하고 있는데, 이것 또한 다를 바가 없다. 하나님께서는 지나간 것들을 다시 찾으신다고 말씀하고 계시기 때문이다.

 

 본인이 생각하는 이 세상은 사람들을 단련시키기 위한 장소일 뿐이며, 귀히 쓸 그릇과 천히 쓸 그릇을 가려내기 위한 시험대라고 볼 수 있다.  그 시험중에 하나는 작금에 예수의 역사성은 인정하나, 그 기적은 인정하지 않는 유물론이 바탕인 진화론이 횡행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도올을 비롯 백 낙청이나 박사들과 및 목사타이틀을 가진 여러 사람들이 각종 대담회에 나와 그들의 잘못된 가르침을 설파하고 있다. 인본주의적인 생각으로 신본주의를 비판하는데, 사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어떤 분이신가를 모르고 오해하고 있으며,  바울이 되기 전 사울로 볼 수도 있다는 생각이다. 

 

 그들이 무슨 생각을 하고 무슨 말을 하던지 사실 본인과는 아무 상관이 없으나, 가만히 생각을 해보면, 아마도 그들은 하나님의 구원계획에 있는 교회숫자 6억명에는 들기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확실히 단정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의 그들에 대한 계획을 지금으로써는 전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주님말씀중에 모래위에 집을 지으면 비 바람에 무너지기 쉽다는 말씀을 참고해서 보면, 그들의 인본주의적인 철학과 생각은 너무나도 쉽게 허물어져 버릴 것이다. 모든 것이 주께로부터 말미암았다는 말씀은 인간이 얼마나 하잘 것 없으며 아는 것이 없는 존재인가하는 것을 여실히 드러내 준다. 

 

 이러한 그들의 철학과 사상은 이제 인내천사상이라는 것을 내고, 사람안에 하늘이 있으니 내가 곧 신이다라는 것으로 변질되기 쉽다. 이미 그런 설법가들이  있으며, 그들의 사상을 받아들인 사람들이 존재하고 있다. 사람이 곧 하늘이다 라는 것의 본질적 사상은 인자라고 말씀하신 그분의 겸손함에서 해답을 찾아야 한다. 

 

 이 말은, 사람들의 생각이란 것은 창조주로부터 말미암았으며, 인간들이 가진 감정들을 진화론적인 관점에서 찾아야 할 것이 아니라, 그 분께서 가지고 계신 성품과 각종 행동들에서 찾아야 한다는 말이다. 그 분께서 가지고 계셨던 사람으로써의,  존재를 위한 희노애락을 우리들에게도 주입시켜 놓으셨다는 것이다. 물론 이것을 그들이 깨닫기란 쉽지 않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람을 위한 연구가 아니라 하나님을 알기 위한 연구를 해야 하는 것이며, 결국 그것이 그 분과 우리사이를 가깝게 할 것이고, 언젠가는 닮게 되어 우리를 그분의 또 다른 모습이라고 주장할 수도 있게 될 것이다. 

 

 그렇게 성숙된 인격으로 인해 그 분께서는 우리를 부끄럽게 여기지 않을 것이며, 말도 안되는 얘기이긴 하지만 친구로 생각하신다는 그 분의 말씀대로 조금은 부끄럽지 않은 대화상대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하나님의 천지창조와 기적을 믿지 않는 세대가 많은 이 시대라면, 그와 반대로 창조때로부터 면면히 흘러오는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믿는 우리같은 주의 백성도 있음을 감사하게 여기며 이만 줄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