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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시록관련/성경교제관련

자기 희생에 관한 단상

by 디클레어 2024. 9. 19.

 어린 아이가 물에 빠져 죽어가는데 가만 있을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혹은 불길이 타는 곳에 갇혀 있는 사람들을 구하고자 자신의 목숨을 아끼지 않고 뛰어 들어가는 사람은 얼마나 되겠는가?  물론 그런 사람들이 없지는 않다. 다른 사람의 목숨을 구하고 자신의 목숨을 잃는 사건들이 일어났음을 우리는 보고 듣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는 그 자신이 죽고 다른 사람을 살리기위해 그리 하는 것인가? 아니면 그 사람도 구하고 자신도 멀쩡할 것 이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에 그렇게 했던 것인가?  이것에 대해서는 겪은 바가 없어 당사자인 의인들만 아는 일일 수 밖에 없겠다. 

 

 그러면 여기서 신도 없고 영혼도 없고 윤회도 없다는 불도자의 주장을 들으며 이해되지 않는 면이 없잖아 있어서 다시 생각해 보고자 한다.  많은 사람들의 지극히 상식적인 생각대로라면, 바로 앞선 글에서 언급했다시피 자신이 그렇게 믿고 있다면 다른 사람에게 도를 전파하는 것이 어떤 유익이 있는가 하는 것이겠다.  아마도 그가 이런 말을 할 수 있다는 것은 지극한 유물론에 빠져 있다거나 한계에 다다른 불가지론자 일 수 밖에 없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그런 사람에게 물어봐야 할 첫 번째는 당신은 진화론을 믿는가? 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면 그는 이렇게 대답할 수 도 있다. 그것은 이 문제와 아무 상관이 없고 논점에서 벗어난 얘기이다. 라고 말이다. 그러나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어떤 사상이나 주장이나 생각이 나오기 위해서는 어떤 무엇인가가 바탕이 되어 있지 않으면 그런 확신을 가질 수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가진 확신이란 것을 보면서, 특히 여의 경우를 생각해 보면 너무 잘 알 수 있는 것이, 나는 모든 것의 기초를 하나님께 둔다. 그분께서 세상을 창조하셨으며 심판하시는 그날까지, 그리고 그 이후도 모두 하나님께서 주관해 나가실 것이라고 믿고 그 것을 밑바탕에 깔고 생각과 사상을 전개해 나간다는 뜻이다. 그래서 확신도 가질 수 있었고, 특히 계시록의 미스테리를 풀이하면서 그 분의 예언서 전개에 대한 놀라움과 논리적인 기술방식때문에 그 분의 권위와 실재하심에 믿음에 믿음을 더할 수 있었다고 생각하고 있다. 

 

 이런 것이 바탕이 되어 도저히 알 수도 없고 이해할 수도 없었던 하나님의 존재하심을 천부경 상경에서 찾았고, 우리 민족의 역사도 노아에게서 찾을 수 밖에 없는 행보를 했던 것이다.  하나가 시작되었는데 그것은 없음에서 시작되었다는 천부경의 첫마디는 실로 놀라운 지혜라고 밖에 볼 수 없었다. 이것이야 말로 창조 이 후 모든 인류가 궁금해 했던 문제가 아닌가? 

 

사람이라면 누구나 하나님의 존재에 대해 의심을 품을 수 밖에 없는데,  이말은 그야말로 무릎을 탁 칠 수 밖에 없는 가장 간단하지만 명쾌한 통찰력을 우리에게 제시해 준 것이라고 보기 때문이고, 그 이상은 인류가 알아낼 수 있는 길이 전혀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빅뱅을 믿는 진화론자들은 이런 것에 코웃음을 치겠지만 어차피 그런 사람들과 나는 질적으로 달라서 어우러질 수 없다.  이 말은 그들과의 대화는 전혀 무의미하고 말도 통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이와 같이 각 본인이 어떠한 생각을 하고 있느냐 하는 것은 그 기초에 무엇을 깔고 있느냐에 따라 달라지며, 그것에 의해 각 사람의 사고와 철학이 결정된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아라고?  우리는 수련을 통해 그 경지에 다달아야 하고 도달할 수 있다고?   기독인의 입장에서 얘기를 해 보자면, 그럼 주님께서 우리에게 수련을 하라고 하셨나? 그래서 그 높은 경지에 오르라고 하셨나? 적어도 나는 그런 말씀을 성경에서 본 적이 없다.

 

이상에 대해 생각을 하고 그의 주장을 살펴보면 그는 허무론 (虛無論)자일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이다. 이 허무론은 동양 철학에서, 만물의 본체는 형체도 없고 볼 수도 들을 수도 없는, 인식을 초월한 존재이므로 마음 자체를 비움으로써 도덕의 극치를 삼아야 한다는 이론이다(네이버). 본인이 살펴본 바 이 이론은 하나에 중점을 둔 것이 아니라 무에 중점을 둔 사상으로 보인다. 물론 그들의 사상에 대해 그리고 주장에 대해 자세히는 알지 못하고 별로 관심도 없다.

 

 그런데 이런 까닭에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전도하라고 하셨을 것이다. 그야말로 앞 뒤 분별을 못하고 좌우가  없는 이들에게 희망을 주시려고 하신 것이다라는 말이다. 그런데 이런 말로 그들을 설득시킬 수 있을까? 단연코 없을 것이다. 

 

 만물은 하나님께로 말마암았다라는 명제는 우리에게 안정감과 평안을 주며, 더불어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신다고 하는 것은, 스스로 신실하다고 하신 그 분의 말씀이 있기에 각인에게 위안과 기쁨, 또 새로운 하늘과 땅에 대한 기대도 준다. 이것이 곧 진리이며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는 말씀에 가장 부합한 말씀이 아닌가 생각한다.  따라서 하나님을 진실되게 믿는 기독인들은 자유하며, 인생들에 쏟아지는 질문에 대한 고민이 없으며, 오직 주님 오실날 만을 고대하게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