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 동양 철학에 대해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사실 깊이 파고 드는 것은 한계도 있고 시간도 오래 걸리기에 이미 단념한 상태이긴 하지만, 그 동안은 하나님말씀 파헤치고 알아내기에도 벅찬 시간이었다는 것이 더 맞는 말이겠다.
각설하고 현재 일어나는 일들중에 이스라엘의 하나님에게서 돌아선 이들의 주장들이 있다. 그들은 신과 기적을 믿는 것은 표층신앙이라고 이름짓고, 그것을 넘어 하나님, 즉 신을 인정하지 않는 신앙생활은 심층신앙으로 명칭하고 마치 자신들의 신앙이 더 깊은 사람인양 교인들을 가르치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반대로 이런 상태에서 네피림이 날뛰는 말세의 환란에 들어가면 그들은 어떻게 될까? 기적을 믿는 사람들을 바보들인 양 바라보는 그들은 적그리스도나 거짓선지자, 그리고 네피림이 일으키는 놀라운 능력들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그리고 그것이 사실 그대로 압박이 되어 자신들의 생명을 위협할 때, 그들은 어떤 행동들을 할까?
그들은 신은 없다라고 주장을 하고 있다. 그리고 그렇게 철저하게 믿고 있는 것 처럼 보이는데, 그 때에 나를 신으로 섬기라는 적그리스도, 곧 사탄의 요구를 그들은 거절할 수 있을 것인가? 신이 없는데 어떻게 너를 신으로 섬기라는 것이냐며 거절하고 죽음을 맞이할 것인가? 아니면 그들의 눈속임적인 기적에 자신의 잘못을 받아 들이고 하나님으로 섬길 것인가? 이것에 대한 그들의 행위가 너무 궁금하다.
숫자로 푸는 요한계시록에서 잠깐 언급한 적이 있는 것 같은데, 하나님께서는 왜 자신의 모습을 보이지 않으시고 세상의 역사를 이뤄나가고 계신 것인가? 에 대한 숙고가 전혀 없었으니 아마도 그들은 자신의 정신이 붕괴되는 경험을 맛보게 될 것이라고 어렴풋이 짐작해 볼 수는 있겠다.
진화론은 과학,이라는 미명하에 근 현대 철학가들이 정신줄을 놓았듯이, 아마도 배웠다고 하는 사람들은 더 많은 세상 정보와 지식에 노출이 되어 있기에 올바른 생각을 가지기가 쉽지 않은 걸까? 그렇다면 세상지식을 접하지 않는 것이 차라리 더 나은 일이겠다.
현재는 과거보다 훨씬 많은 이러한 정보들을 접하고 있고, 더불어 세상을 속이려는 사탄의 계획도 더욱 치밀하게 진행되어 많은 사람들을 오류에 빠뜨리고 있다. 안타까운건 그런 사람들은 설득도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하기사 사람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그럼 이런 사람들을 변하게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혹시 그래서 이 모든 혼란들을 잠재울 마흔 두 달의 대환란을 준비하신 것일까? 그렇다면 하나님의 행사가 놀랍고 이해가 될 만도 하다. 어린 아이와 같은 자들이 천국으로 들어간다 하시지 않으셨나, 그럼 그 말씀이 바로 이런 순전한 마음으로 창조주 하나님을 간절히 찾는 자들을 지칭하신 건가?
하나님의 기적을 믿지 못하겠다는 사람들의 뇌 구조가 너무나 궁금하다. 4대복음서에 나와 있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기적을 일으키는 장면들은 모두 거짓이고, 예수가 한 말만 믿을 수 있으니 그것만을 분석하겠다는 그 뇌 구조말이다. 그렇다면 무엇을 찾겠다고 그들은 성경을 뒤지는 것인가? 이것은 믿고 저것은 믿지 못하겠다는 그들은, 박학다식하게 보이는 사람들이 예수를 부정하는 논리에 그냥 넘어가버리는 어리석은 사람들인가? 아니면 갈릴레이처럼 핍박받았다는 것을 명예로 삼고 싶은 것인가?
혹은 불교에서 말하는 윤회를 믿나? 사람이 다시 태어나는데, 개로도 태어나고, 소로도 태어나고, 개미로도 태어나고, 메뚜기로도 태어나고, 물고기로도 태어나고, 혹은 전생에 좋은 업보를 쌓아 다시 사람으로도 태어나고 한다는 것을 믿고 있는가 말이다. 이런거야 말로 미신아닌가? 하기사 그것을 믿지 않는다면 더 큰 문제이긴 하다.
인생이 아무 의미 없이 그냥 왔다가 가기만 하는 존재들이라면 그들이 사람들을 교화한답시고 하는 일들은 그야말로 헛 수고일 수 밖에 없다. 누구나 그냥 한 생을 살고 사라져야만 하는 인생들이 가르침을 받는다고 세상이 뭐가 달라지는가 말이다. 오직 무한반복되는 일 만이 있을 뿐이다. 그러니 차라리 윤회는 있다라고 믿는 것이 더 나을수도 있겠다.
우리는 누구나 자신을 사랑한다. 그래서 열등감도 있고 자존심도 있고 한 것이다. 나를 내려놓고 오로지 다른 이들만을 위해 그런 일들을 한다는 것은 적어도 지금의 나에 있어서는 이해불가이다. 누가 또 다른 누군가를 곤경에서 구해내고 싶다는 것은 나는 이미 도가 통했다라는 것을 전제로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내가 미완성인데 다른 사람들만큼은 완성시키겠다라고 하는 것은 어불성설이기도 하다. 그들은 그렇다면 불교에서 말하는 깨달음을 얻었거나 기독교에서 말하는 구원을 이미 얻은 사람들이라는 것이 된다. 그런가?
아마도 그런 사람들의 머리속은 알게 모르게 각종 종교들의 교리들로 뒤섞여 있어서 올바른 판단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제 앞서 얘기했던 것들에 대한 궁금증에 대해 지켜보는 일만 남았다.
과연 그들은 적그리스도를 신으로 받아들이는 상징인 666을 자신의 이마나 오른손에 받을 것인가?
'계시록관련 > 성경교제관련'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자기 희생에 관한 단상 (0) | 2024.09.19 |
---|---|
동학의 개벽과 서학(기독교)의 종말론 (0) | 2024.09.15 |
삼신(三神)과 동양의 유래-나의 역사관 (4) | 2024.09.05 |
내가 지금 교회(예배당)라고 불리는 곳에 나가지 않는 이유 (2) | 2024.09.05 |
진리를 찾는 자들을 방해하는 자들에게 (0) | 2020.12.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