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종교관련/신앙관련

[스크랩] 이단과 천사의 창조시기와 역할, 그리고 천사의 수에 관해 - Noauri님의 질문에 대해(1)

by 디클레어 2010. 4. 12.

이단과 천사의 창조시기와 역할, 그리고 천사의 수에 관해(1)

- Noauri님의 질문에 대해

 

 

※글의 분량이 많아져 세 편으로 나누어 올립니다.

 

인간인 우리가 어찌 하나님의 뜻을 다 알겠으며, 어찌 다 완벽하게 실천에 옮길 수 있겠습니까? 그렇게 하지 못함은 우리 모두에게 남아있는 죄성이 가장 큰 원인일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회개하며, 주님 뜻에 순종하며 한발, 한발 나아가려는 인간의 그런 모습 또한 주님의 눈에는 선하고, 의롭고, 아름답게 보실 것입니다.

 

님께서 올리신 다른 글들도 잘 읽어봤습니다. 모래시계님께서도 언급하셨듯이 혼돈의 시대에 주님의 말씀에 대한 올바른 진리의 말씀을 전하시고, 경각심을 주시고자, 파수꾼의 역할을 자임하시려는 모습의 그 노고와 열정에 감사 드립니다.
님의 글들에는 그런 모습들이 느껴지는 것 같아, 그 부분에 있어서는 저도 동의하는 바가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제가 님께서 올리신 ‘신구약 종말복음을 이단이라고 속이는 사탄’이란 글에서 제일 첫 부분의 글이 상식선에서 맞지 않는 것 같아, 혹 내가 잘못 알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바르게 알 필요가 있다 싶어 님에게 드린 질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많은 부분에서 공감하는 부분도 있습니다. 저는 궁금해서 그러니 시간 되시면 글의 첫 두 문장에 대해 왜 그렇게 생각하셨는지 알고 싶습니다. 즉 ‘사탄도 하나님의 피조물로서 천지창조 때 만들어진 존재라고 말합니다. 저는 여기에 동의하지 않습니다.’라는 부분 말이죠.”라고 외람되지만 질문을 드렸습니다.
저는 짧은 답변을 기대했는데, 아침에 잠시 들어와 봤더니, 님의 답글이 있기에 기쁜 마음으로 보다가는 기쁜 마음에서 뭔가 좀 찝찝한 마음으로 변하더니, 이젠 조금 불쾌한 마음이 들려고 그러더군요. (제가 이렇게 속이 좁은가 봅니다)

 

님께서 올리신 답변은 이랬습니다.
“Jason님의 질문에 대하여: 저의 답변은, 칼럼글에도 나와있듯이 <천사장 ‘루시퍼’의 타락으로 공중추방론>을 믿고 따릅니다. 참고로, 제가 다녔던 교단의 교회들은 성결교, 순복음, 감리교, 침례교(기침), 장로교(합동, 통합)입니다. 그런데, 님께서는 <하나님의 천지창조 때의 사탄 창조론>를 믿는다는 얘긴가요? 그렇다면 성경을 근거로 제시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소속 교단을 참고로 부탁드려도 될는지요~”

 

저의 단순한 질문에 남께서 불쾌하게 여기셨다면 이 글을 통해 정중히 사과드립니다.
저는 처음에 ‘루시퍼의 타락으로 공중추방론’을 믿고 따릅니다란 부분에서는 모든 성도들 역시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바라서 크게 눈을 의심하지 않았죠. 그런데 그 다음은 님께서 다니셨던 교회들을 말씀하시는지, 아니면 그런 교단이나 교파의 가르침에서 배웠다는 얘기인지, 아니면 그곳에서 말하는 내용에 동의하신다는 의도인지는 모르지만, 나열하셨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엔 좀 황당한 질문을 제게 던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좀 생각을 해야 했답니다.

 

‘나는 논쟁을 하자고 시비를 건 것도 아니고, 내가 잘못 생각하고 있다면 그저 배우려는 입장인데, 내가 질문을 잘못해 불쾌하게 만든 것일까? 내가 성경도 제대로 모르기 때문에 한 수 배우고자 함이 이 분에게 도발적이며, 도전적으로 비춰졌을까? 그렇다면 그 부분은 내가 사과해야 함이 마땅하지 않겠는가?
그런데 소속 교단은 왜 묻는 거지? 내가 다니는 교회에 이단성이 있는지 없는지 파악하기 위함인가? 그럼, 자신이 ‘이단 감별사’라도 된다는 건가?’
그렇게 옹졸한 생각도 했었답니다.

 

저는 이단이란 용어에 대해서 잠시 생각하게 됐답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이단 감별사는 인간이 아니라, 오직 주님뿐이란 사실입니다.
이 세상에서 주님의 뜻대로 100% 완벽하게 운영하는 교회가 정말 있을까요?
<요한계시록>에 기록된 그 일곱 교회들 역시 주님의 뜻과 완벽하게 일치하는 교회들은 없었습니다. 말씀을 통해 지금까지 이천년 가까운 시간이 흘렀음에도, 그렇게 주님의 말씀을 연구하고 가르치며, 순종하라고 잔소리처럼 했음에도 완전한 교회가 없음은 어찌 된 일일까요?
그것은 인간의 완악함 등으로 인해 하나님의 뜻을 완전하게 순종하는 인간이 없으며, 따라서 완전한 교회는 없음을 의미한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주님께서는 자신을 믿는 우리를 거듭나게 하셨고, 구원해 주셨음을 약속하셨습니다.
이는 대체 무얼 말하고 있을까요?
인간의 그 어떤 노력과 의지, 그 어떤 행위로도 우리는 주님의 뜻을 완전하게 만족시킬 수 없음을 나타내고 있음을 말하고 계셨습니다. 오로지 주님의 은혜 외에는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는 점을 깨닫게 하는 말이었습니다.

 

계시록의 그 교회들은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 교회들의 모습이었습니다.
사도들을 통해 가장 직접적으로 주님의 뜻이 전달되던 초대교회 시대에도 이단의 교리가 발생해 주의를 주는 부분들이 기록돼 있죠.
그런데 님의 짧은 답변 속에는 가시가 있어 보였습니다.
뭐라 그럴까요? (용서하십시오) ‘내가 너보다 많이 알고 있다. 네가 나 만큼 성경에 대해 알아?’라는 (속좁은 제가 느끼는 감정입니다만) 우월의식이 바탕에 깔려 있다는 생각이 떠나지 않더군요. 그러면서 ‘이에 대응을 해야 할까, 말아야 할까?’라고 오전 시간들을 할애하게 만드셨네요. 그냥 웃는 것이 건강에 좋겠죠? ^^

그래서 이 기회에 우리 회원님들은 이미 저보다 더 잘 알고 계시겠지만, 이단이라는 것에 대해 제 의사를 분명하게 밝혀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타락한 천사들과 천사들의 역할 등에 대해서도 제 견해를 언급하고 싶어 글을 올립니다.

 

대체 이단(異端, heresy, cult)의 정의가 무엇일까?
님께도 제가 드리고 싶은 질문입니다.
님께서 이단의 정의를 제대로 알고 계셨다면, 그런 질문을 함부로 제게 묻지 못했을 것입니다.
이단이란 글자 그대로, ‘바르다고 하는 것과는 다른 것’을 의미합니다.
끝이 다르던, 실마리가 다르던, 처음이 다르던, 시초가 다르던, 바르다고 하는 것과 다른 것을 의미합니다. 다시 말해, 우리가 올바르다고 생각하는 것, 우리가 진리라고 생각하는 것과는 뭔가 다르다는 것을 이단이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의 글에는 이렇게 적혀있기도 하더군요.
‘기독교는 교파가 우후죽순격으로 늘어났다. 새로운 교단이 생길 때마다 기존 교단은 신흥교단을 이단으로 매도하는 전철을 밟았다. 감리교, 순복음, 성결교 등, 모든 교단은 이단으로 시작해 정통의 지위를 확보한 것이다.’라고 말이죠.
기가 막히지 않습니까? 어쩌면 적절한 표현인지도 모릅니다.
왜냐하면, 성경에서도 유대교를 믿던 자들은 주님을 따르는 제자들을‘나사렛 이단의 괴수(ringleader of the swct of the Nazarenes, KJV)’[행 24:5]라 부르며 이단이라고 했었으니까요.
성경의 단어들을 규정하고 정의한 성경사전에서는 더 기가막히게 정의되어 있습니다.
이단에 대해‘정통신앙에 대립되는 신앙을 가진 무리로 교회 안에서 당파를 만드는 사람들을 지칭한다’라고 정의해 놓았습니다.
님은 이 정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저는 이 이단이라는 정의에 대해 한 마디로 실소를 금할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그 정의에는 엄청난 모순과 교만이 숨어있었기 때문이죠. 그러면서 모두가 이단이라고, 모두가 정통이라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닐 정도로 상당히 애매모호한 부분 또한 없지 않았습니다.
그것은‘자기가 믿는 종교의 교리에 어긋나는 이론이나 행동, 또는 그런 종교’란 부분은 많은 사람들을 스스로 착각과 오해를 불러일으킬 만한 여지가 충분히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렇다면 내가 몸담고 있는 교회의 교리와 다르면 무조건 이단이란 말인가?
내가 생각하고 있는 것과 다르면 무조건 이단으로 정죄해야 한다는 말인가?
설교시간에 목사님께서 해주신 말씀과 다르면 이단이라 단정해도 되는 것인가?
과연 무엇을 믿어야 하는 것인가?

그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과연 무엇이 옳은 것이며, 무엇이 정통인가를 생각할 필요가 있지 않겠습니까?
그렇다면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올바르다고 생각하는 것, 진리라고 생각하는 기준은 무엇이어야 한단 말일까요?

 

정통과 이단의 잣대는 무엇이어야 하는가?
그 잣대이고 기준이 되는 척도는 오로지 하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보고, 읽고, 깨우치라고 주신, 거룩하신 말씀, 그것 외에는 없었습니다.
다시 말해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과 같은 내용이냐, 다른 내용이냐가 중요한 것이지, 목사의 말이, 교단의 교리가, 어떤 학설과 이론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거룩하신 하나님을 믿는 사람에게나 적용될 수 있는 기준일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에도 한 가지 맹점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 말씀, 즉 성경에 대해 조금은 알고 있어야만 분별할 수 있다는 전제조건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즉 성경의 말씀이 무엇인지도 모르는데, 어떻게 이단인지 아닌지 구별하고, 판별하고, 분별할 수 있을까요?
님께서도 아마 동의하시리라 봅니다.
성경의 말씀을 기준으로 전하는 단 한 사람의 올바른 외침에 대해 절대다수의 사람들이 그를 이단이라고 손가락질하며 매도하고 죽이기도 했었습니다. 이런 사실들은 기독교의 교회사를 살펴보면‘다수의 소수 지배원리’가, 또‘다수결의 원칙’이 적용되고 있음도 알 수 있습니다.


한 예로, 로마 카톨릭은 성경의 말씀대로 살고자 하는 진실하고도 신실한 소수(그리스도인)를 자신들의 다수의 힘으로 그들을 이단으로 몰아 화형시켰고, 사지를 찢어 죽이며, 칼로 난도질을 하고, 인간으로서는 도저히 상상하기도 힘든 끔찍하고도 사악한 고문과 악행으로 수많은 진실한 그리스도인들을 그렇게 잔인하게 죽이며 처형했다. 권력과 힘을 가진 다수는 저항도 하지 않고, 주님의 말씀을 보존하고 지키고자 하는 소수를 그렇게 처참하게 죽였다. 6800만명이라 어마어마한 숫자가 그렇게 순순히 죽음을 받아들였고, 또 그렇게 죽어갔습니다. 다수의 이단에 의한 소수의 정통이 말이죠.
다수의 이단적 외침이 소수의 진리 수호자들에게 그렇게 잔인한 학살을 자행했었습니다.
주님이 이 땅에 오신 뒤로 그 말씀을 지키고 실천하는 자들은 루터의 종교개혁 이전에도 있었고, 지금도 계속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 말씀을 지키기 위해 그들은 죽음도 기꺼이 받아들였습니다. 육신의 죽음을 초개같이 버린 그들의 죽음을 우리는 순교라 불렀습니다.

출처 : 분별하라 (MYSTERY, BABYLON THE GREAT)
글쓴이 : Jason 원글보기
메모 :